2014/12/31 23:59

방명록 (7년만에..)

위 사진은 본 블로그의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글루 개설 7년만에 방명록이 나오는 군요. 늦었지만 일신 차원에서 방명록을 새로 답니다. 제게 하실 말, 연락사항이 있으신 분들은 여기에 글을 남겨주십시오. * 기본적으로 이 블로그는 링크자유입니다. 다만 링크 하셨을 경우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여기 글들은 기본적으로 CCL 원칙에 따르고 있습니다. 여기 올려진 내용을 옮겨가려고 하는 경우, 옮겨갈 장소나 인용 사항들을 알려주시고, 출처 표기를 해 주시면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출처 표기시에는 여기 링크를 표시해주길 바랍니다. 인용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포스팅 내용의 무단 변경이나 출처 및 작성자 변경은 금지합니다. * 다만 포스팅에 특별한 조건과 제약이 붙은 경우에는 거기에 따라주시고, 또 한 영리상, 상업상 목적과 관련된 부분이나, 학술적 인용 목적이 아닌 온라인 바깥에서의 이용에 대해서는 무단 이용이나 복제를 불허하며 반드시 사전에 연락을 주시고 협의할 것을 요청합니다. 

2014/02/25 14:50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요..


이제는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데 또 인용사례가 나와서 올려봅니다.

         
         "중국의 정보기구", 이호철 (국가정보학, 박영사, 2013)

 사실 이 건 일전에 몇 번 언급한 것과 같이 대만 쪽에서 나온 자료 내용을 내가 옮겨서 실은 걸 다시 인용한거니 딱히 내 거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긴 한 점이 있지요. (인용 원문 http://chimuchyo.egloos.com/1076089 )
 다만 그 자료에서 나온 내용을 그대로 받아올린 게 아니라 내가 다른 내용을 통해 교차 검증(참고 http://chimuchyo.egloos.com/3874139 ,  http://chimuchyo.egloos.com/3874140)을 통하여 그 신뢰도를 검증한 것도 있고 또 아직 글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이 후 변동 상황이나 최근 내역에 대한 부분도 좀 입수한 게 있긴 합니다. (이를테면 16국이 정보기술국으로 개편된 것이나 17국의 임무 변화 가능성, 국제협력국 개편 이런 부분들)

 
 
 
9/11테러와 미국의 정보실패 연구 : 정보문화모델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9/11 Terrorist Attacks and US Intelligence   Failures : An Analysis Based on the Intelligence Culture Model, 서동구(경남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3)

                 CIA 역대 DDO 현황 (http://chimuchyo.egloos.com/805137)
                 CIA 조직구조 개황 1. 작전본부 (http://chimuchyo.egloos.com/400818)
                       
이 건 블로그 이름까지 나왔어!! OTL 진짜 이 이름이 그대로 나오다니...  (무슨 수치 플레이도 아니고)

 저 내용은 실은 본문이 아니라 논문이 냉전 시대 이 후부터 9.11에 이르는 때까지 CIA의 상황을 작전본부 (현 NCS)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지라 이해를 돕기 위한 부록으로 그 시절까지의 작전본부 책임자와 조직 구조를 첨부한 부분입니다.

 저기 인용된 내용이 최신 자료는 아니지만 -거의 10년 전에 썼었던 거니까요- 논문이 다루는 시기가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였기 때문에 대략 시기가 비슷하죠. 사실 저 이후 작전본부도 변화가 컸고 국가비밀활동본부 NCS로 명칭도 바뀌었고 테러대책센터 CTC가 말도 못하고 커지고 변화된 측면이 많은 데 이런 부분도 한 번 다뤄봐야 하겠지만 요즘 사정이 안 좋아서 도통 힘들더군요.

 논문 자체는 9.11을 중심으로 한 정보 실패를 다루고 있는 데 기존의 여러 요인들과 달리 정보기관 지도부, 정보기관장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부각시키고 있으며 정보기관장과 정책결정자가 맺는 관계, 신뢰의 문제와 거리의 딜레머 등을 통하여 정보기관의 운영에 대하여 독특한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거나 피상적으로 알려졌던 90년대 시기 당시 CIA 내부 상황이나 이를 둘러싼 여러 가지 사안들을 정리해놓고 있어서 꽤 참고자료로도 유용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흐드드한 건 저 저자 (대략 이런 분이십니다. 참고  꼭 외교부 소속만 공사로 나가는 게 아니죠 )

 확실히 정보실무에 종사하셨던 분이라 보는 관점이 실제 중심적 점도 눈길을 끌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 쪽 기관과의 일상적 연락과 접촉을 담당하신 책임자셨던 분이 저 테마를 주제로 한 것에 대하여 여기 글을 리퍼런스로 제시하셨으니...
물론 재직 당시 접하신 내용을 드러낼 수 없으니 공개 정보원을 인용하신 거겠지만 그 게 여기에 나온 거니 뭔가 흐드드하군요.


 분명 학술서적 및 논문에 관한 거니까 인문사회 밸리로 올립니다.

2013/12/23 11:22

늦었지만

 때가 좀 늦은 것은 알지만

올해는 크리마스마스 이브에 블루 노래방 밤샘 오프 같은 걸 하시는 분 없으신지요?
만약 하시는 분이 있으면 좀 끼어도 될까요?

(니가 해보라 이런 말 들어도 어차피 인원이 별로 없을 테니 그 건 논외로 하지요)

2013/12/09 18:37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요즘 포스팅이 한동안 뜸한 가운데 문득 러시아 관련 모 포스팅을 할까 생각을 하고 대충 소스를 찾아 정리하고 올릴 태세를 갖춤.
그러던 중 한 동안 뜸했던 Google Analytices로 리퍼러를 살펴보니
이어지는 내용

2013/12/01 18:32

간담회 참석 신청합니다

2013년 이글루스 간담회에 초대합니다.

 초기 멤버로서 그 동안 활동이 뜸하긴 했지만 이 번 인수를 계기로 이글루스 앞으로 방향과 전망이 어떻게 될 지
에 대해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여기에 관련하여 몇 마디 드리면

 이글루스의 발전 방향을 어떻게 잡아갈 것인가? 특히 이는 초기 이글루스가 시작되었던 컨텐츠 위주의 성격에서 그 후 많은 변화가 있었고 현재는 일부 측면에서 과열된 정치적 측면 때문에 그 성격이 변질된 바도 없지 않은데 앞으로 이글루스를 어떻게 발전시킬 복안이 있는지

두 번쨰로 이외 관련해서 전망이나 방향이 있으면 어떤 방식으로 이를 구현할 것이며, 특히 이와 관련해서 생각하고 있는 추가 서비스나 아이템은 있는지

세 번쨰로 많은 이들의 지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데 새로 개편된 사항에서 통계 부분에서 구체적인 리퍼러나 일별 종합적 사항이 어렵게 되었는 데 여기 대한 개선 여지가 추후 있는 지

이 정도입니다.

2013/11/22 12:45

우국의 라스푸틴 등장인물과 실제모델 이 다리가 네 다리냐

 
 한 동안 발매가 끊어져서 중단된 건가 헀던 우국의 라스푸틴 이 번에 완결편까지 세 권이 한 꺼번에 나왔군요.
지금은 자금 사정상 구입은 힘들지만 당장 완독했습니다.

작품 소개 및 평 참고 (http://blog.daum.net/mooncourt/8473484)

이 작품의 실제 주인공인 사토 마사루와 작품의 주 의 무대가 되는 지난 2002년의 스즈키 무네오 사건에 대해서 전 사건 초기부터 관심을 가지고 관련자료를 모으고 흐름을 추적해왔습니다.

 그래서 이 걸 한 번 정리를 해 보려고 꽤 생각만 한 게 어느 덧 10년이 흘렀군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이 번 라스푸틴 완간을 기념으로 이 건에 대해서 그리고 이 사건의 주인공인 사토 마사루라는 인물에 대해서 제가 품고 있는 바
를 조금이나마 풀어볼까 합니다. (이 번에는 작심 삼일이 되지 않도록 기원해 주시길..)

 일단 사건의 배경 개요나 전개 의미(특히 제가 바라보는 시각에서)에서 나중에 올리고 우선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 특히 일본쪽 인물들과 그 실제 모델이 된 이들에 대해서 먼저 올립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들은 거의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이는 각종 언론 보도 및 이 후 관련자 (특히 사토 마사루)의 각종 저작, 기고물에서 언급되고 있어 이 저작을 먼저 읽은 저로써는 작품을 볼 때 아 이 건 누구구나 이런 걸 찾아내는 것도 꽤 흥미 중 하나였습니다.


          소장 사토 마사루 관계 저작들 책 및 기고 연재물 사본 포함

배열은 작품 명- 실제 인물 직책(작중 등장 기준) 순입니다.

 일본 측

<외무성>

유우키 마모루 憂木-사토 마사루佐藤優 주 소.러시아 대사관 서기관 88~95. 국제정보국 분석1과 주임분석관 98~02 (러시아 정보 분석.수집팀장 99~ 02)
주인공

사이죠 카즈마사- 도고 가즈히코東郷和彦 주 러 공사 94 ~ 96 , 구아.구주국장 99~01 (이 후 주 네덜란드 대사 재직 중 해임)

전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東郷 茂徳 한국계) 손자. 라이덴 대학, 산타바바라 대학 객원교수
2006년 일본 귀국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1102026002

고토 료 -  마에지마 료 前島陽 국제정보국 분석1과 수석사무관, 구주국 러시아과 러시아 지원실 과장보좌(총무반장)


아리토 - 무토  아키라 武藤顕 외무성 (이 후 국제정보통괄관 제4국제정보관, 러시아 과장, 총합외교정책국 총무과장 현 보스턴 총영사)


테라우치- 코데라 지로 小寺次郎 구주국 러시아과 과장 99 ~ 02 (이 후 주오스트리아 공사, 주 UN대표부 공사.대사, 국제정보통괄관, 구주국장, 현 사우디 아라비아 대사)


타지리- 시게타 히로시 茂田宏  주 소.러 공사 90~국제정보국장 96 ~97 ( 이 후 주 이스라엘 대사, 국제테러 대책 담당 대사)
작중 부처 "타지리" 일제 점령시 한반도 출생. 주한공사 ~96 및 북일교섭 담당 대사 역임


마츠모토- 마츠다 쿠니오 松田邦紀 러시아 과 과장( 이 후 주 이스라엘 공사, 주 디트로이트 총영사  현 인사원 파견 인사원 공무원연수소 부소장 )

작중 요정 유아 플레이 주인공. 해당 시점 당시는  러시아 과 수석사무관 (95)
주 디트로이트 총영사 재직 시절 디트로이트 시 위안부 소녀상 건립 방해 공작 가담


토모사다 -오카모토 유키오 岡本 行夫 전 외무성 북미국 북미1과장 , 총리 보좌관
외무성 사직 후 외교 평론가 전직. 이 후 하시모토, 고이즈미 내각에서 총리대신 보좌관
내각관방 참여, 외교 고문 등 역임 특히 이라크 문제 담당

루블 위원회 관련

오니시 - 코니시 마사키 小西正樹 러시아 대사관 총괄참사관 공사(이 후 짐바브웨 대사, 지구협력 담당 대사 역임)
타하라 - 하라다 치카히토 原田親仁 러시아 대사관 참사관 .구주국장 (이 후  체코 대사, 현 주 러시아 대사)
무라야마 - 야마무라 요시히로 山村嘉宏 2등 서기관 (총무 담당 )루블 위원회 추궁 2005년 11월 훗카이도 오키나와 위원회 (작중 등장)

2005년 11월 오키나와.홋카이도 특별위원회 루블 위원회 추궁
http://www.daichi.gr.jp/html/saishin17-12-06.html (작중 등장)

 

정치가 (스즈키 제외 작중 모델 언급 인물 특히 전직 총리. 대신 생략)

츠즈키 미네오都築 -스즈키 무네오 鈴木宗男

고토 고지 가토 고이치 전 자민당 간사장


카와나카 이치타 - 나카가와 이치로 中川 一郎 전 자민당 국회의원, 스즈키가 비서로 봉직.
농림수산 대신 과학기술청 장관 역임. 자민당 보수 강경 노선 세이란카이(青嵐会) 나카가와 파  영수 1982년 총재 선거 패배 이 후 1983년 변사(자살)

작중 서적 <민사- 가와나카 이치타 괴사사건>는 그 죽음을 다룬 "悶死 中川一郎怪死事件"의 패러디

쇼타- 나카가와 쇼이치 中川昭一
나카가와 이치로 아들. 이 후 자민당 국회의원, 전 농림수산.재무대신 역임
2009년 총선 낙선 이 후 사망


기타


이마다 히데아키 -이이다 마사히데飯野政秀
미츠바-미츠이 물산 산업프로젝트부 팀장 産業プロジェクト部チームリーダーだった
쿠니시리 발전기 사업 관련 체포. 유죄 선고

타카무라 -니시무라 西村尚芳 도쿄지검 특수부 검사 (사토 담당 검사)
카토 - 사토 레이코 佐藤玲子 전 스즈키 무네오 비서 (암투병 중 체포. 이 후 석방 사망)


러시아


보리스 엘친 대통령
보리스 부르불리스 전 러시아 공화국 국무장관(현재 대통령 행정실장) 겸 제1부수상 (이 후 상원의원)
타티아나 디야첸코 옐친 차녀 대통령 이미지 담당 보좌관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행정부 의장(총리)
올레그 소스코베츠 행정부 제1부의장
아나톨리 츄바이스 전 행정부 부의장, 대통령 행정실장
코르자코프 대통령 경호대 SBP 대장
미하일 바르수코프 연방안보부 FSB 부장
타르피시체프  대통령 보좌관 겸 국가 체육관광 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전 행정부 의장, 대통령 (이 후 행정부 의장 현 대통령)
세르게이 이바노프 FSB 차장.분석 예측본부장, 국방장관( 이 후 행정부 부의장)
일라인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공산당 제2서기


겐나니 야나예프 전 소련 부통령

이스라엘
가브리엘 고로데츠스키 GABRIEL GORODETSKY 텔아비브 대학 교수.커밍스 러시아.동부유럽 센터, 쿠리엘 국제연구 센터 소장
http://www.tau.ac.il/~russia/The_Cummings_center_series.htm

일단 만화 이야기니까 만화 밸리로 올립니다.

P S
번역의 수준은 몰라도 실제 모델까지 소개하는 부분에서 꽤 세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음.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은 그렇다 쳐도
사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그 아오야마 학원 대학 교수까지 언급하는 걸 보면


2013/07/18 10:21

블로그 인용 목록

 
최근 블로그 운영 방향에 대하여 고민도 하고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글을 자주 올리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본 블로그의 수준에 대하여 준엄하게 질타하신 분이 있어서 생각나는 김에 정말 제 블로그 수준이 그런 건지 생각을 해본 김에 여기 내용이 각종 연구 보고서, 논문, 학술지 기사 및 단행본 등에 출처로 올라간 사례들을 모아 올려봅니다.



'동아시아 정세 변화와 한국 외교 과제' 2007 정책연구과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외교 안보 정책 연구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외교 안보 정책 연구 (외교안보  연구원 2007)


해당 관련 포스팅은 중국의 외교 안보 정책 기구인 중앙외사 영도 소조와 그 구성원에 대하여 언급한 내용으로 이 내용은 위 보고서 위에 비슷한 내용의 학술지 논문 및 정책 보고서에서도 몇 번 추가로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중국 외교정책 결정과정: 대 한반도 정책결정 과정에 대한 이해를 위한 초보적 분석 , 신아세아 2008 가을



"중국 인문사회 부문 싱크탱크 현황과 정책결정과정", 인문정책연구 총서 2008-10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 보고서에 대한 소개에 대해선 여기를 참고

   중국 정보기관 중 국가안전부 조직과 관련하여 대만 쪽 자료를 정리 요약한 포스팅 내용이 정보연구 관련 학회에서 발표된 논문에 인용되었고요.



"중국 정보조직과 정보활동", ‘글로벌 정보환경 변화와 국가정보의 새로운 모색’ 국가정보학술회의 2008.8.26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 해당 포스팅 인용 관련 내용은 여기를 참고

 위 논문은 또 한 국가정보연구 지에 재게재되기도 했습니다. (참고 "중국의 정보조직과 정보활동: 국가안전부 중심으로", 국가정보연구 VOl.1 No 2 또 한 이 포스팅 인용에 대해서는 또 조금 애매한 사례도 있기도 한 데 모 학위 논문에서 이 부분과 관련해서 2차 인용을 1차 인용으로 표시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참고)

 그 외에 예전에 다른 사이트나 커뮤니티에서 제가 작성했던 것을 블로그에 다시 올린 포스팅 중에서 예전 내용을 잘라내어 변형시켜 출간물에 실은 사례도 보입니다. 


SVR (해외정보국)

..조직은 국장 아래 6명의 차장을 두고 여러 부서로 나뉘어져 있는 데 CIA와 같이 공작부서와 분석부서의 명확한 구분이 없고 차장 산하의 부서도 주요부서는 국장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부서로는 외국의 정보활동을 탐지하여 대책을 마련하는 대외방첩처, 장기간 잠복하여 활동하는 고정간첩과 사보타지 공작원 등을 관리하는 비법공작처 , 정보분석처 공작기획처 공작지원처 ,금융 .무역 산업 등 경제와 관련된 정보를 생산하는 경제정보처 , 심리전과 친러 세력을 지원하는 지원 관리처 (명칭 불분명) 첨단 과학 기술 정보를 수집하는 과기정보처 , 공작에 필요한 각종 특수장비를 개발하고 지원하는 공작기술처 , 전산 시스템을 유지 관리하고 정보를 존안하는 정보관리처 등이 있다

공작차장 산하에는 각 지역별 8개 부서가 있다 1처는 미국 등 북미 2처는 중남미 3처는 북 중 서부 유럽 국가 4처는 남부유럽 5처는 아시아 및 오스트레일리아 6처는 아랍 국가 7처는 아프리카 8처는 구소련의 국가를 담당하며 해당지역의 저보수집과 공작임무를 수행한다. 그외 테러 국제범죄 대량살상무기 등을 담당하는 대외연락처 국제범죄대책처 대량살상무기 통제처와 인사 재정 법무 물자지원을 담당하는부서가 있다. 

p. 258 

경찰

일본 경찰은 국가경찰과 지방 자치경찰로 나뉘어져 있다. 국가경찰은 경찰청이 지휘하고 지방 광역자치단체 단위에는 경시청과 경찰본부가 있다. 경찰 중 공안경찰이 정보 외사 방첩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공안경찰은 각 지방경찰에 속해 있으면서도 중앙 경찰청의 통제를 받고 있다
경찰청의 경비국은 우리 나라 경찰청의 경비국 정보국 보안국 외사관리관을 모두 합친 것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경비국은 국장 휘하에 심의관이 있으며 그 아래 경비기획과 경비과 공안1과 공안 2과 외사과를 두고 있다
경비기획과는 경비와 관련된 법률과 제도 문제 공안업무 전반을 기획 조정하는 부서이다 또 특수활동 부서인 제로부대를 운영하고 있는 데 이 제로부대는 공안대상에 대한 정보수집 감시 감청 등을 직접 하고 있다고 한다 경비과는 우리 나라의 경비국과 마찬가지로 기동대 운영 관리 경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공안 1과는 일본 공산당을 비롯한 좌익세력 과격단체에 대한 정보수집과 감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산하에 특수조직범죄대책실을 두고 옴 진리교와 같은 과격집단의 테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공안 2과는 극우세력들에 대한 정보수집 및 감시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황실 및 국가 주요인사의 경호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외사과의 주 임무는 방첩이다. 수사와 체포권을 가지고 일본의 방첩 실무를 총괄하는 조직이다 외사 1, 2, 3 계는 각 지역별로 담당을 정하고 있고 분석 1, 2, 3계와 지도계를 두고 있다. 또 외사기술 조사관은 간첩통신을 감청하는 조직이며 외사조사관은 수집된 간첩통신을 분석하고 국제테러대책실은 국제테러에 관한 정보를 수행하고 있다

도쿄의 경시청은 지방경찰이지만 수도라는 특수성 때문에 경비와 별도로 공안부를 설치하여 1천여명의 공안경찰이 외사와 방첩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공안부 산하에는 공안총무과 공안 1 2 3 4과 외사 1 2과가 있는 데 좌익세력이나 과격단체를 담당하는 공안 1 2과 등은 시국에 따라 200~700여명의 공안경찰을 배치하고 있다.

pp. 269~270

<국가정보의 이해 , 서석사 2005년 1월 31일 발행> 

 해당 건은 문장을 직접 따온 게 아니라 전체 내용을 발췌하여 다시 쓴 부분이지만 내용 자체는 포스팅과 동일한 걸로 여겨집니다.
참고 http://chimuchyo.egloos.com/997732

해당 책이 인용 혹은 도용했다고 보이는 내용을 담고 있는 포스팅은 다음과 같습니다

러시아 대외 정보부 SVR http://chimuchyo.egloos.com/472010
일본 공안 경찰 http://chimuchyo.egloos.com/685420

참고로 위 책을 지은 이의 경력을 최근에 알게 되었는 데 대략 이런 분이더군요.

http://web.chonnam.ac.kr/bb/view.php?b_id=jnunotice&s_cate=5&page=6&doc_no=2376
http://natural.chonnam.ac.kr/natural2/?mid=notice&page=19&sort_index=regdate&order_type=desc&document_srl=658

http://www.dailyjeonbuk.com/news/articleView.html?idxno=42129

진짜 업계인이셨다!! 그 것도 꽤 고위간부... 

 그 외에도 여기 유입 경로 검색어나 리퍼러를 보면 꽤 재미있는 곳도 있고 리퍼러나 검색어의 지속성으로 보면 여기 포스팅 내용을 참고로 할 가능성이 보이는 곳들이 좀 있긴 한데 이 건 확증된 게 아니니까 언급하지 않고 뭐 이 정도 사례를 들었는 데

 
이 발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자료 정도는 되지 않았나 봅니다. 성향이나 정치적 호오를 별도로 한다면 저 말 하신 분한테 내용 수준면에서 지적받을 만한 그런 건 포스팅 한 기억이 없고, 또 저 발언의 당사자가 이 블로그의 주 내용을 이루고 있는 분야에 대하여 저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근거라든지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어떨 지도 의문이 가긴 하군요. 발원이 발원인 만큼 뉴밸로 보냅니다.

P.S 그런데 나중에 정말 이런 블로그의 학술 논문, 보고서 , 단행본 이력도 학술 관련 경력으로 넣을 수 있을까요? 

2013/07/16 17:37

베이징 정보기술 응용연구소 국가안전부 16국 산하 기관 가능성


 최근 수 년간 중국의 사이버 공격 및 첩보 활동에 대하여 서방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경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각 국의 기업 언론 사이트에 대한 해킹, 반체제 사이트에 대한 공격 및 네트워크 전산망 침투를 통한 중요 정치, 경제, 기술 정보 절취 사건에 중국이 배후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이런 활동 전부가 중국이 저지른 것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사이버와 인터넷이 중요한 안보의 영역으로 떠오르고 사이버 공격. 정보전의 규모와 범위가 확대되어 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중국이 이 분야의 전력과 역량을 강화하고 있으며 갈수록 그 범위와 활동을 넓어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여 미국을 주도로 한 해외 각 국에서는 중국의 사이버 전력 역량 규모 및 침투에 대하여 무척 주목하고 있으며 정부를 위시하여 군, 보안업계, 연구기관에서는 이에 대한 각종 조사,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일전에 맨디언트 사에서 발표한 보고서(참고)에서 미국에 대한 해킹의 배후로 인민해방군 61398 부대를 지목하였고 민간 안보 싱크탱크인 프로젝트 2049에서는 지난 몇 년간 중국의 사이버 전력에 대한 주목할 만한 발간물들(참고 1 2)을 연이어 내놓은 바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중국의 사이버 전력의 조직, 편성 및 활동 방식 사례 및 정보 보안 산업계와의 포괄적 연계를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표된 바 이런 이러한 연구들은 주로 중국군의 사이버 전력 분야에 주된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여타의 다른 조직 특히 정보기관의 이 분야 활동은 상대적으로 소홀한 면이 있다. 이는 물론 군보다는 정보기관의 활동이 보다 보안이 엄격한 탓에 자료의 부족으로 다루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일부 자료들은 국가안전부의 사이버 활동에 대하여 다소간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는 그를 바탕으로 하여 이 베이징 정보기술응용연구소가 국가안전부 정보화 전산 부서의 산하 기관 혹은 가장 명칭이라는 것을 밝히고 이 연구소의 활동과 업무를 바탕으로 국가안전부 사이버 관련 활동의 일단을 제시하려고 한다. 다만 자료의 부족 또 한 기술적 전문성의 문제 때문에 활동의 실제적 양상, 특히 포렌식 관련 내용은 다루지 못했고 또 한 그 범위도 군 및 타 기관과의 관계를 포함한 중국의 사이버. 정보전 전체상이 아니라 국가안전부 활동의 일부로 한정하였다.

caveat

이하 내용들은 제가 개인적인 자료 수집과 정리를 통하여 내놓은 것으로 아직 공신력 있는 관련 전문가들에 의하여 확증되지 않은 내용이며 베이징 정보기술연구소가 국가안전부 16국 산하라는 것을 비롯한 여기 실린 주요 사항은 아직 다른 발간자료나 전문가 견해 등에서 뒷받침되고 있는 않은 사적 견해라는 것을 밝힙니다. 이에 따라 이 내용들을 인용하거나 참고하실 경우 각별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Beijing Application Institute of Infomation Technology  : MSS Cyber Intelligence Operations ?

 국가안전부를 비롯한 중국 정보기관의 조직과 구조에 대해서는  "중국의 정보.보안체계"에서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국가안전부 조직도를 소개하고 있으며 16국은 컴퓨터 전산 업무 담당 부서로 나와 있다.

"16국은 국안부 내부 전산망의 안전 관리, 전산망의 외부 침입 방지 및 관련 정보 분석단위로 추정된다. 17국은 ‘청안총공사’(淸安總公司) 같은 국안부 소속 기업 및 사업의 관리를 담당한다."



"중국의 정보·보안체계"(국가정보론, 2002)  이하 중국 정보 보안 2002 ; 中共對台工作組織體系概論 (八十八年修訂版, 郭瑞華, 法務部調查局, 1999)


이 내용은 中共對台工作組織體系概論(99년판)에 바탕을 둔 것으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6국은 국가안전부 내 전산망 운영 관리 및 내부 보안 유지와 같은 전산, 정보기술 관련 업무를 수행하며 또 한 인터넷상의 정보 수집.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베이징 정보기술 응용연구소 Beijing Application Institute of Infomation Technology 는 바로 16국의 위장 명칭 혹은 그 산하기관으로 여겨진다. 이 연구소는 정보처리, 소프트웨어 보안, 클라우드 컴퓨팅 보안 , 네트워크 공격 분석 및 대책 등 전산, 정보 기술 분야 관련 연구 개발에 종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16국과 베이징정보기술응용연구소 관계 

 중국정부는 국가안전부에 대한 사항을 거의 공표하고 있지 않고, 이에 관련된 모든 사항은 비밀로 유지되어 있다. 따라서 내부 조직이나 인사에 대한 정보는 매우 희소하다. 그러나 웹상에서 검색한 각종 중국 내 정보 보안 관련 회의, 학술 세미나, 언론 보도,관련 조직, 단체 소개 . 소식 등에서 국가안전부 인사들이  베이징 정보기술응용연구소 직함을 혼용한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례로 이전에 16국 국장조리를 지낸 바 있는 류롱핑(容平)은 국가안전부 16국, 정보화 센터 소속 이외에도 베이징 정보기술응용연구소 직함으로 언론 인터뷰 및 학술 논문 발표를 한 바 있다. 또 한 다른 국가안전부 인사들에서도 역시 이와 비슷한 경우를 볼 수 있다. 다음 표는 국가안전부 인사들이 장소나 시기에 따라 다른 직함으로 베이징정보기술응용연구소 소속을 사용한 사례를 보여준다.

               베이징정보기술응용연구소 BAIT 관련 국가안전부 인사 MSS personnels affiliated with BAIIT


성명

국가안전부 직책

병행 직함

 

*류롱핑 (容平)

 

국가안전부 16국 국장조리 家安全部第十六局局助理(국가정보보안기술입법심포지엄 家信息安全技立法研讨会2002 참고), 국가안전부 정보화센터 국장조리 家安全部信息中心局助理(정보자원 개발 이용 고위 포럼 信息开发利用高层论坛2004 참고), 하이난 성 국가안전청 부청장 海南省家安全厅长(2005 임명 참고)

 

베이징정보기술응용연구소 (증국 정보 보안 전문지 2002 인터뷰 참고, 중국 정보 보안지 논문 참고 )

 

천정취엔(正川)

 

국가안전부 정보화센터 연구원 家安全部信息中心(정보자원 개발 이용 고위 포럼 信息开发利用高层论坛2004 참고)

 

베이징정보기술응용연구소(중국정보화협회 회원대표대회 정보화발전전략 고위포럼 信息协会第四届会代表大信息化略高层论坛2005 참고1, 2)

 

장선()

 

 

국가안전부 16국 安全部16(중국전산학회 컴퓨터 보안전문위원회위원 참고)

 

베이징정보기술응용연구소 (정보 보안 전문지 학술논문, 2002 참고)

 

자오빙()

 

국가안전부 정보화센터(중국정보화협회 정보보안전문위원회위원 信息协会信息安全专业员会主任委참고), 부국장(2011 참고)

 

베이징정보기술응용연구소 컴퓨터실 주임(정보자원 개발 이용 고위 포럼 信息开发利用高层论坛2004 참고), 연구원(국가 863계획 인터넷 지리공간 관측 발견. 예보기술 프로젝트 팀 참고)
 

 

안전화 (安振)

 

국가안전부 국장 安全部 局(중국전산학회 컴퓨터보안 전문위원회 참고)

 

베이징정보기술응용연구소 부소장(정보자원 개발 이용 고위 포럼 信息开发利用高层论坛2004 참고), 소장(중국정보화협회 제5기 이사 信息协会第五理事 참고)


                * 류롱핑은 이 후 하이난 성 기위 부서기로 전보되어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다.

 또 한 전국지리정보표준기술위원회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이 위원회의 제3기 위원명단에 완지엔쥔阮建军이 국가안전부 16국 정보기술연구소 소속으로 올라와 있다. 그는 또 한 중국도시과학연구회 산하 디지털도시전문위원회 위원(부비서장 겸임)이기도 한 데 여기서는  그가 베이징정보기술연구소 소속이며 고급공정사라고 나와 있다. 

                 전국지리정보표준화기술위원회인원 명단 第三届全国地理信息标准化技术委员会人员名单 

              
                                 디지털도시전문위원회위원 명단 数字城市专业委员会

 위의 사례들로 미루어 보아 베이징 정보기술응용연구소가 바로 국가안전부 16국 정보기술연구소로 국가 안전부의 정보 기술 전문 연구기관이며 또 한 국가안전부 정보화 센터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안전부 16국 정보기술 연구소 베이징 정보기술응용연구소

국가안전부 16국 베이징 정보기술연구소 조직관계 (추정) 

16국

국장
안전화 安振 (베이징 정보기술응용연구소 소장 겸임)

부국장 (복수 가능성)
자오빙

정보화센터信息中心 (국장 조리급?)

베이징정보기술응용연구소 (정보기술연구소)
 산하 지역 조직(각 지역별 정보기술응용연구소)

위치


          베이징시 하이디엔구 서원경기장 110호 北京海淀区西苑操场110号1933信箱 

  베이징 정보기술응용연구소는 베이징시 하이디엔구 서원경기장 110호 사서함 1933 北京海淀区西苑操场110号1933信箱에 위치하고 있다.  또 한  이 부근에 국제관계대학도 있는 데 이 학교 역시 국가안전부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사실상 국가안전부 산하 교육기관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양자가 같은 구역 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또 한 이 연구소는 베이징에 위치한 본원 외에도 또 한 상하이, 충칭을 비롯한 직할시 및 성, 자치구 등 지역별로 하부 단위를 두고 있어 전체적으로 볼 때  방대한 인원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각기 소재지명을 따서 해당 지역 신식기술응용연구소로 지칭되는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상하이에는 상하이정보기술응용연구소가, 광동성에는 광동성 정보기술응용연구소가 있다.  일부 지역의 경우에는 성급 정보기술응용연구소와는 별도로 지역 내 특구나 첨단 산업 관련 거점에 이러한 연구소들이 설치되어 있는 사례도 있다.

 연구 및 전문 분야

 이 연구소는 각종 정보 전산 기술 관련 연구 개발에 종사하고 있으며 특히 정보 보안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각종 사이버 관련 분야에서 국가안전부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소 소속 인사들이 학술지나 학술 대회 같은 공개적 장에서 발표하는 각종 연구논문을 통하여 관심 연구 대상 및 전문 분야들을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분야로는 컴퓨터 시스템 및 네트워크 설계 분석, 전산망 보안, 정보 보안 체계 아키텍처 구조, 관련 소프트웨어 분석 및 설계, 클라우드 컴퓨팅, 신뢰성 컴퓨터, 데이타베이스 검색 및 데이타 퓨전 분야 등을 들 수 있다. 다음 표는 이러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내용

2013/06/18 16:56

국가정보기관 심리전 관련 부서 변천 개황 그리고... (추가 수정)


국가정보기관에 심리전 부서가 창설된 것은 1967년으로 올라감.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은 67년 대선과 총선 이 후 기존에 분산되어 있던 반공 선전 및 체제 우위 관련 활동 등을 일원화 통괄하기 위하여 8국을 심리전국으로 신설. 

 8국(심리전국)
초대 국장 김기완(김재권) 당시 3국(국내 보안 정보국) 판단관 임명

김형욱은 여기에 대하여 회고록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음



          p. 혁명과 우상: 김형욱 회고록 3권
 


 이 후 8국은 곧 7국으로 개편되었음. 이 심리전국은 그 업무 특성상 방송 공연 출판 등 문화 활동 및 매체와 관련이 깊었음. 때문에 원로 문화인들의 회고에서 과거 이 7국 심리전국과 관련된 내용을 간혹 찾아볼 수가 있음


제가 국립극장에서 연극할 때인데 그 당시 중앙정보부, 지금의 안기부죠. 거기에 문화국이 있어서 말하자면 대북관계 등을 관할하기 때문에 가끔씩 중앙정보부 7국에서 불러다가 썼어요. 그런데 우리 집사람이 제 눈에 띄어가지고 방송국으로 가야 집사람을 잡을 것 아닌가 생각하던 차에 마침 67년도에 수양대군에서 김종서 역이 들어왔어요.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내 가슴 속에 무대가 있다' 탤런트 최불암 1편 2007-10-12

67년 문예춘추 사장의 초청장이 왔다. 이진섭과 함께였다. 신원 조회에 걸린 것을 중앙정보부 7국장인 김기완이 해결해 주었다
[구름의 역사] 62. 구름을 타고, 한운사 2004.05.12


1975/76년 무렵 조직 개편으로 일본 담당 7국 신설. 기존 심리전 국은 5국으로 개편된 것으로 여겨짐. 5국(대공수사국)은 제1수사국으로 변경추정 (해당 시기 조직 개편에 대해선 여기를 참고)

개편된 심리전국장으로 강인덕 9국(북한정보) 국장이 임명

중앙정보부 심리전국 국장
강인덕 75 ~77 (참고)
 

 
                                              극동문제연구소 NEWSLETTER, 제62호 / 2003년 1월(겨울)


1977 심리전 부서 재조정. (국가)심리전 총국 창설(참고. 기존 5국 해외정보공작국 개편 )

심리전 총국장
김영광(전 판단기획국장 참고) 77 , 이동복 77~ 79 (참고)

1979 심리전 총국 폐지. 심리전 국 5국 재개편

1980 조직 개편 및 축소로 심리전 국 폐지 북한 정보국에 흡수 통합

1989/90 심리정보국 재창설 (정확한 시기 불명)

심리정보국
국장 김덕창  90 ~ 93? ( 이 후 내외통신 사장 역임.)


그 후 김덕창은 문리대 학생회장에 당선되고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까지 지냈다. 김덕창은 중앙정보부원이 된 후 주로 서울대학교 후배들에 대한 사찰을 담당하였다. 그 후 1986년에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전북지부장, 1988년에는 안기부 경남지부장, 1990년에는 안기부 심리정보국장, 김영삼 정권 하에서도 1993년~1995년까지 ‘내외통신’ 사장을 지내는 등승승장구했다.
[기억과 증언]YTP(청사회:靑思會), 기억과 전망 26호

이 후 심리정보실로 개편 유지 (참고)

1997.3 3차장 하 303실(심리정보실) 개편 (참고)

1998.4 조직 개편으로 대북 심리전단으로 축소. 대북전략국 관할 하에 편입 (참고)



                  p.580, "한국의 국가정보체계, 국가정보론


  이 후 불명


2009.3 독립부서 편제 (3차장 하 직할 부서로 분리). 이 후 조직 확대  (심리정보국 승격? 2개단 참고)

2011 12 심리정보국장
민병주



 
                   국가정보원 관련 의혹 사건 수사 결과, 서울중앙지검 수사 발표문 


몇 마디 덧붙이자면

 북한, 아니 국제적 첩보전의 세계에서 사이버스페이스가 새로운 첩보전의 영역으로 떠오르고 사이버 상의 동향 파악, 정보 수집 및 분석, 역정보 선전 등 사이버 심리전 등이 정보기관들의 임무로 부각되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고 또 북한의 경우도 사이버 인터넷 상 선전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임.
 
이러한 공세에 대한 대응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 대책의 범위와 방식 그리고 활동 영역에 대해서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기준 그리고 제한이 요구됨.

 현 정권 정부는 무조건 옳다라는 기치 하에 정부에 반대하고 비판하면 결과적으로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이므로 무조건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배제 혹은 제압해야 하는 적으로 삼는 건 잠정적으로 비판과 다양한 여론의 형성이라는 민주주의의 근원적 요소를 억누르고 일방적인 관점만 주입시켜  이 것이 건전한 민주사회의 기본요소를 위험할 요소를 안고 있음. 이는 검찰 발표문에서도 분명히 나타나 있음.

 
 특히 국가정보기관이라는 특수한, 고도의 비밀 속에서 활동하며 특히 대통령에게 복속된 조직의 속성상 이러한 활동은 일방적인 현 정권 옹호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고, 결국 국정 보좌라는 명목의 정권 안보로 전락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음.
 
국정원이 북한의 사이버 심리 공세에 대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본연의 임무지만 그러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혹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그 걸 빌미로 국민 여론을 일방적으로 조작하고 비판과 반대를 일방적으로 억누르므로써 이는 민주사회의 기본적 토대 그 자체를 흔드는 사안이 된 것임

검찰 공소장에서 이 부분을 명확히 밝히고 있음

"그 직무범위를 넘어서 사이버 공간에서 직접 국민들을 상대로 각종 홍보나 반대의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은 위법한 것이며, 더욱이 국가기관이 일반 국민의 의견인 것처럼 가장하여 사이버 공간에서 국민의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개입하는 행위는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고 하더라고 표현의 자유 등을 보장한 우리 헌법의 이념에 비추어 결코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북한의 사이버 전 공세나 종북 세력의 존재 같은 문제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고 대응이 필요한 문제지만 그 명확한 범위를 어떻게 규정짓고 그 방법 역시 적법하고 또 한 민주 사회의 기본적 토대를 흔들 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색되고 실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 이런 점에서 SKY樂님의 지적은 고민할 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음.

뱀발

 이 건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좀 어긋나고, 어쩌면 약간은 냉소적인 어조도 띠고 있을 지 모르지만 솔직히 정보 활동및 첩보전 양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덧붙이지면 심리전 선전도 하려면 좀 똑바로, 제대로 하라는 말을 붙이고 싶음. 이 건 단순히 들키지 말라는 문제가 아니라 심리전 대응을 하는 방식과 그 밑에 깔린 인식에서부터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다.
 일례로 이슬람 과격주의에 대항하는 영국 정부의 struggle for hearts and minds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주장이 아랍이나 이슬람계에 전적인 동조는 아니더라도 심리적 지지를 받는 지 파악하여 그러한 경향으로부터 일반의 지지를 떼어놓기 위해선 어떻게 그들의 마음에 파고들 것인가를 생각하는 그런 고도의 심리 선전 프로그램은 생각해날 수는 없었을까?

참고 Struggle for hearts and minds
http://image.guardian.co.uk/sys-files/Observer/documents/2005/09/04/Confidential.pdf 

 특히  팔레스타인의 투쟁을 지지하고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그래서 서방에서 보기에는과격파 이슬람 선동가로 낙인찍힌 이슬람 성직자를 단순히 입국을 금지하거나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이들로 하여금 극단주의 테러를 비판하게 하여 이슬람권에서 호소력 있게 받아들이도록 해서 결과적으로 테러 극단주의를 고립시킨다는 발안의 추진은 과연 이 게 정보대국의 전통이구나 하고 감탄할 정도의 세련된- 그리고 어느 정도는 제국의 관용 혹은 위선을 담긴- 정보공작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무작정 외국의
사례를 수용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무비판적인 북한 찬동 세력을 몰아내고 이들이 대중적인 확산과 지지를 받는 걸 차단하기 위해선 무조건 선을 갈라놓고 적으로 모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생각해볼 여지는 제공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참고
http://image.guardian.co.uk/sys-files/Observer/documents/2005/09/04/Document1.pdf 
** 여기 수신자로 나온 John Sawers는 당시 외무성 정무총국장 Political Director 였으며 현재는 SIS(MI6) 부장임.

이 번 건에 대한 하태경 의원의 발언에 꽤 공감가는 내용이 많아서 추가 http://news1.kr/articles/1177328.  이 번 사태가 민주사회의 기본토대를 흔들었다는 점 외에도, 종북의 범위를 무작정 넓히면 종북 자체의 의미가 희석되고, 결국은 진짜 위협을 잡기가 힘들어진다는 지적은 대응적 활동의 효율성 차원에서도 깊히 숙고해야 할 듯하다.



2013/06/18 07:21

몇 가지 주저리


1. 요즘 밸리에 내 버튼을 자극하게 하는 테마가 뜨고 있는 데 ㅋㄹㄹ가 하는 소리에 어이가 나갈 지경. 초법규적 기관이라는 말도 안 되는 레토릭에서, 어느 나라 정보기관이 그렇게 일하냐 라는 소리들을 들어보면 당장 그렇게 반론할 수 있는 국가들 정보기관 운영 관행이나 국내 여론에 파급을 주는 게 문제가 된 외국의 정보공작 사례를 주루륵 댈 수 있지만 그냥 상대를 말아야 하지 생각하면서도 돌아다니면서 뻘소릴 지껄이는 걸 보면 
사실 젤 기가 찼던 건 이 게 아닐 까 함. 국정원 개입에서 원세훈의 지시에 깔린 기본적인 생각이나 자세가 과거 김형욱 시절과 비슷하다는 걸 지적했는 데 거기에 대해서 이런 소릴 하는 걸 보고 어이가 가출. 더 이상 상대할 생각을 잃어버림 

 


1. 또 ㅄ이 하나 더 있는 데 ㅄ하고 상대하는 건 역시 시간낭비. 자기를 비꼴려고 하는 말을 가지고 그 게 마치 해당 발화자의 진심인 양 전체적인 맥락은 무시하고 그 것만 가져와서 낄낄대고 있으니 지가 ㅄ이라는 걸 만방에 입증하고 있으면서도 이해못하고 그 걸 지적하니까 나보고 뭐라고 하니.. 원래부터 상대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걸 괜히 상대하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그리고 국정원 3차장의 지위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했는 데


  누구 앞에서 3차장을 운운하는 건지.. 내가 그 분야에 대해서라면 님의 열배 스무배는 더 자세히 알 건데요. 원한다면 3차장의 설립 배경과 운영 상황 변천, 역대 3차장 인사들과 그들의 주요 전력 및 전문 분야 그리고 각 시기별로 내부적 동학 같은 데에  대해서 쭉 이야기해 줄 수도 있지만  역시 만수무강에 지장을 줄 수 있으니까 넘어갑니다. (코렁탕은 싫어요) 어차피 이야기를 해봤자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니 그냥 넘어갔어야 하는 건데

그리고  주장하는 그 국정원 차장 증언은 3차장이 아니라 김 모 전 2차장일 건 데 수정을 해줘도 아직 모르는시는 건가요. 그 양반이 월조나 뉴데~ㄹ리에 쓰는 이야기나 증언들 그 게 소스라는 게 보이는 데 3차장 타령을 하니 내가 지적을 한 건데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아유 상대할 것도 없을 것 상대하니 괜히 힘만 빼고 시간만 써비런 것이니. 

  떡밥으로 나온 DJ 당시 대북 휴민트 타격 문제도 사실 내가 10년 이상 조사하고 있는 문제이지만 네역에서 얽히고 설힌 거나 불분명한 점들이 많아서 예컨대 97 대선 당시 북풍 관련 건 동북 지역에서의 안기부 휴민트 라인망 접촉 흑금성 보고 이대성 파일의 유출 , 대북 휴민트 활동 과정에서 신분 노출 정황, 98년 동북 정보망 철수 관련 사항 그리고 북한에서 있었던, 김유송의 증언과 관련된 숙청 건 및 이 사건의 심화조 사건 연루 가능성 같은 복잡한 문제들 혹은 가설적 설정 네가티브 검증건들이 얽혀있고 관련자 증언이나 자료도 파편적으로 부분분분 엇갈리는 것도 많은 데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데 걍 당사자 일방 측 몇 명 증언만 편의대로 취합해서 그 게 전부이고 진실인양 받아들이고 퍼뜨리는 꼴을 보고 있으면 대충 지네들이 접하거나 들은 자료 내용이나 폭이 보이고 어디서 뭔 소리를 들어서 이런 말을 하는 지 그런 게 대충 다 보이는 데.. 난 지들이 접한 내용들은 물론이고 그 연계되는 , 혹은 연계될 수도 있는 다른 상황이나 정황 내역들 가설 및 거기에 대한 반박적 가능성까지 접하고 검토를 해봤지만 아직은 판단을 내리기에는 부족하다고 보고 있는 데 저렇게 단언하고 퍼뜨리고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면 조롱하거나 유언비어로 몰아거니 무식하거나 혹은 하나만 알면 참 편하다는 생각도 드네

1.  최근 밝혀진 개입 내역을 보면 이 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내가 들은 소릴 생각하면 그 때 그 분들은 지금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물어보고 싶어지네. 특히 어느 분은 이전에 이런 글을 올렸다가 지금은 지웠는지 비공개를 했는 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글을 내린 것 같은 데 http://liel.egloos.com/2992297 

         지운다고 다가 아니죠. 

 최근에는 이렇게 http://whitedwarf.egloos.com/m/comment/3960242 출구전략 겸 물타기를 시전하고 계시고


 또 나 보고 이런 소릴 퍼붓고 영혼이 해맑다고 하신 어느 분은

           그래 잘 두고 봤다!! 두고 보니 이렇네

상황이 밝혀지니 이런 태도 http://worb.egloos.com/3945461를 보이시고 계신 데 이 건 비교적 합리적인 태도라서 더 웃김...

진짜 지금  뭔 생각을 하는 지 내가 물어보고 싶어짊

** 사실 저 때 내가 공격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가 왜 근거를 대지 못하고 옛날 일만 끄집어내느냐 였는 데 그 당시엔 알고 있었지만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고 그 주요 제보자 증언이나 관련 기사들을 교차 검증하고 일부 관계자들을 만나서 해당 고발 내용이 상당히 근거가 있음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 걸 발설할 수가 없었으니 뭐 이제는 상당수가 공개되어 드러났지만 말이야





2013/03/15 18:18

모 부대 코인(수정)

E bay에서 얼마 전 모 미군부대(한국 주둔) Challenge Coin이 상품으로 나온 걸 봤다. 사실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많은 밀덕들이 이를 통하여 미군 군장이나 부대 패치 군용 복식을 구하는 건 거의 상식에 가까운 일이나까 이런 상품이 나오는 것은 별 신기한 일도 아니다.
다만 문제는 매물로 나온 게 어느 부대냐는 거였는 데...
이어지는 내용

2013/02/27 14:27

남산의 부장들 주석 및 설명 (정보부 관계자 중심)


남산의 부장들


 작년 말 이 책이 다시 나왔다는 사실을 듣고 얼마 후 전자본을 구해서 접했다. 이 책을 처음 접한 지가  92년/93년이니 처음 본지가 벌써 20년이 넘었고  그동안 또 소장본으로도 몇 번을 읽고 읽었지만 새로운 판에 대한 기대나 희망에 책장을 넘겼다. (정확히는 모니터상에서만)
 이 책에 대한 평가나 가치는 이루 말하기가 새삼스러울만치 정평이 나 있고, 확립된 지라 길게 덧붙이는 건 다른 분들에게 맡기고 싶고 다만 이 번 판을 읽었때 드는 느낌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할까 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멋모르는 중학생 시절이었고 막 이 분야에 입문하던 시기라서 관련서적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던 무렵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 쪽의 이 분야 관련 서적은 극히 희소하던 탓에 이 책이 거의 유일한 소스였고- 이와 쌍벽을 겨룰 만한 작품으로 조갑제의 국가안전기획부가 있었지만 이 책은 시중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탓에 거의 2000년대 후반에서야 겨우 책을 볼 수 있었다- 낯선 인명들과 사건들 속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이 때 무렵은 주로 일화나 정치 비화 쪽에 촛점을 맞추어 갔었다. 나중에 이 책에 나온 이런 비화들이 다른 책들에서 인용 혹은 재구성되거나 혹은 이 책에 나온 비화가 바탕으로 삼은 원 자료들을 접하면서 책의 내용과 비교하면서 떠올리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나고 책이 배경으로 삼은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지식도 점차 쌓여져 가면서 흐름이 하나 둘 보이게 되었고 그 후 간간히 필요한 자료나 사항을 찾으려고 이 책을 뒤지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이 번 신판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예상을 뛰어넘는 바였다. 일부 대목은 거의 외울 만큼 이 책을 읽었고 소장본도 있었지만 이 전에 나온 2권을 합본하여 나온 책을 한 자리에서 쭉 읽어나갔을 떄 흐름은 조금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한국현대 정치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이는 합본의 효과이기도 하거니와 새로 추가된 의혹 사건 정리와 정치인맥사전까지 같은 흐름으로 읽어나간 결과였다. 그 동안 수없이 읽고 읽어왔던 책을 이토록 새롭게 느낀 건 정말 신선한 체험이었다.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한 카의 말처럼 역사는 현재를 향하여 발언하고 있으며 그 경험과 결과는 현재에까지도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며 서로 소통하고 있다. 멀리 예를 들지 않더라도 바로 현재 지금 펼쳐지고 있는 상황을 봐도 이는 명료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과거의 흐름을 완전히 벗었는지에 대하여 의심의 눈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한국 국가정보기관에 대해서도 이러한 바는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정보기관의 지금의 모습이나 역할은 , 물론 그 동안의 정치 사회적 변화와 내부적 개혁에 의하여 상당히 변화되긴 하여지만, 그 기관이 뿌리박고 있는 탄생과 발전의 과정들에 의하여 영향받았고, 또 한 일부 특성들은 오늘날까지 계속 내려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부분 외에도 암시적으로 시사하는 부분을 통해서도 생각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

 다만 신판을 접했을 때 새로운 내용의 추가나 혹은 그 동안 익명이나 이니셜로 처리된 인사들의 실명 추가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그 동안 과거사 조사로 이 책에서 다룬 많은 사건들에 대한 추가적 사실이 들어났고 새롭게 밝혀진 바도 많았지만 그러한 내용이 개정판에서도 그리 반영되지 않았다는 건 섭섭했다. 또 한 증언이나 증인들의 실명에 대해서도 물론
직접 증언일 경우는 증언을 한 이들의 입장을 고려한 익명 처리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설명이나 기술 부분에서의 익명이나 이니셜은 좀 공개해도 괜찮지 않을 까 하는 느낌이 들었는 데- 특히 그 대상이 되는 일부 인사들의 경우 이미 다른 매체를 통하여 실명으로 그 때 상황을 공개하거나 증언하기도 헀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거의 예전판 그대로였다는 건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사실 이 부분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궁금했던 부분이고 그 후 이 분야에 대한 자료, 언론 보도 서적, 증언, 회고 등을 읽고 수집하면서 나 개인 스스로가 어느 정도 슬슬 익명의 주인공에 대한 감이 잡혔기 때문에 이 번판에 그러한 부분이 나왔으면 비교하고자 했기에 더 그러했던 감도 있다.
 결국 여기에 대해서 그 동안 모아온 자료들을 바탕으로 개인적 추측을 곁들여서 개인적으로 작업해서 그 내용을 책에 맞춰 정리하였으며 그 결과를 여기에 올려놓는 바이다.

 여기에 대한 결과는 고르지 못하여 일부 부분은 대상자 개인들이 다른 매체에서 해당 내역을 실명으로 증언한 바와 같은 확실한 대목도 있는 반면 일부는 정황증거나 추정에 의존한 부분도 있기도 하다.
부족한 작업이나마 이 내용들이 이 책을 탐독하시는 분이나 혹은 향후 이 책을 읽으실 분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주석 및 인명 보충

책의 목차나 페이지는 개정판 신출판본의 교보 전자책 버전을 기준으로 하였으며 해당 장의 문장이나 구절 일부를 볼드체로 인용한 후 거기에 대한 설명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위에 언급했듯이 이 내용의 주안점은 묘사되는 개별적 사건 전부에 대한 해석이라기보다는 본문에서 익명이나 이니셜로 표기되는 인사 특히 중앙정보부 관계자들에 대한 보충에 주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내용들에 대한 지적이나 비교 혹은 추가적 사실 제시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제1장 - 김종필, 남산에 양산박 세우다

혁명의 액션그룹-암행어사들

석정선의 2국은 남산 북쪽 숭턱 숭의학원 인근 이후학의 정보연구실...당시 6개국 중에 1국은 인사총무담당, 2국은 해외정보, 3국은 국내정보, 5국은 대공수사, 6국은 특명수사로...


 본문의 내용에 따르면 중앙정보부 설립 당시의 조직을 6개국, 3개실로 기술하고 있으며 주요 인사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잇다.

차장(복수) 서정순 이영근, 2국장 석정선, 3국 고제훈, 서울분실장 이병희, 6국장 강창진, 감찰실장 권영길
그런데 조갑제의 박정희 중 중앙정보부 창설 부분을 다룬 부분에는 창설 당시 직제와 인원들이 본문과는 조금 다르게 나와 있다.

이 부분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정보부는 처음 4국 3실로 출발했다. 총무국(1국), 해외정보국(2국), 수사국(3국), 교육 발전국(5국) 그리고 통신실, 감찰실 및 비서실. 정보부를 창설한 육사8기출신 정보장교는 김종필(부장), 서정순(서정순·기획운영 차장), 이영근(행정관리 차장), 강창진(총무국장), 석정선(해외정보국장-뒤 에 정보차장보), 고제훈(수사국장), 최영택(교육발전국장-뒤에 주일 대표부참사관)등이었다. 이들은 수사에는 경험이 없었다" [박정희 생애] 제13부 내부균열 (1) 정보부 권력의 비대화  -- <389>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9022370237

"행정관리차장에 이영근, 기획운영차장에 서정순, 총무국장에 강창진, 해외 담당 제2국장에 석정선, 수사 담당 제3국장에 고제훈, 교육 담당 제5국장에 최영택, 통신실장에 김태진, 비서실장에 金奉成(김봉성), 고문에 신직수(법률담당)─장태화(정치담당)─김용태(경제담당)이었다." [박정희 생애] 제10부 혁명아의 24시 (33) -- (304)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8102170335

창설 시점 조직 61.5

부장

김종필

기획운영차장(실무 부서 담당)
서정순

행정관리차장(행정, 관리, 지원)
이영근

비서실장
김봉성

감찰실장
권영길

통신실장
김태진

1국(총무)
강창진

2국(전략정보)
석정선

3국(수사)
고제훈

5국(교육발전)
최영택

 이를 보면 조직상 직제에서 복수의 차장을 둔 점이나 해외정보, 총무 부서 관련 기술은 양자가 일치하지만 국내 분야에서는 기술하는 데 조금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정보부 창설 초기에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았고 또 정치적 격변이나 분란이 잦은 탓에 초창기 기구 개편이 빈번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통한 과거 신문 검색은 이에 대한 확실한 답안을 보여주고 있다. (정보부 인사이동이 신문에 나는 일도 있었다!)

 

                                                   정부인사, 1961년 6월 7일 경향신문 참고 (최영택이 최경택으로 오기)


 이를 보면 창설 당시에 5국이 교육발전국으로 있었고 따라서 내 무덤의 침을 뱉어라에 나온 기술이 보다 창설 당시의 조직을 정확하게 반영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한  창설된지 한 달도 못되어 최영택이 교육발전국장, 강창진이 총무국장에서 교체되었다는 것은 내부 인사나 조직이 그만큼 안정적이지 못하고 또 한 격변하는 정치적 상황과 외적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5국장 최영택의 경우 대일 막후 교섭의 임무를 띠고 주일 참사관으로 전보되어 한일 교섭의 막후 중개역을 맡았음. 참고 http://pdf.joinsmsn.com/article/pdf_article_prv.asp?id=DY01199710160055 ) 나아가 여기서 이 인사와 더불어 조직 개편이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3국은 국내 정보 수집을 5국은 대공수사를 담당하는 체제로 개편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특히 쿠데타 이 후 권력 유지를  위하여 정부 부처를 비롯한 국내 각 분야를 감시하고 여러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필요에서 비롯한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개편이 위의 인사와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는 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61년 후반기 무렵까지는 양 부서가 국내업무를 분담한 체제를 갖추게된 것으로 여겨진다. 진실화해 위원회가 전 법무부 검찰국장 위청룡이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가 61년 11월 사망한 사건을 조사한 보고서(참고)에서는 관련 조사 대상자인 당시 중앙정보부의 정보수집국장(전재구)과 주무 책임자인 수사국장(고제훈)의 진술을 기술하고 있다. 이는 각기 당시 3국장과 5국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 시기까지는 이러한 체제가 확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본문에 기술한 조직은 창설 당시가 아닌, 설립 조금 이 후 개편된 내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창설 이후 개편 61. 말

부장
김종필

기획운영차장(실무 부서 담당)
서정순

행정관리차장(행정, 관리, 지원)
이영근

비서실장
김봉성

감찰실장
권영길

통신실장
김태진

1국(총무)
유철수

2국(전략정보)
석정선

3국(국내정보)
전재구 ~ 61 .11?
고제훈

5국(대공수사)
고제훈 ~ 61.11?
전재구? (6국 설립 이전까지) 

6국(특별활동) 
전재구

61년 말 창설?

 특명수사 특히 정치 관계 수사를 담당한 6국(특별활동국)의 경우 설립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61년 말부터 62년 시점까지는 설치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박정희 생애] 제13부 내부균열 (8) -- <396>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9030770246 
 
창설 초기의 이러한 조직 개편들은 국내 분야의 활동 소요를 반영한 것으로써 정보부가 군사정권을 유지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으며 또 한 국내 정치 및 정책 전반에 깊숙히 관여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태하, 어느 반역자의 고백, https://www.whoim.kr/detail.php?number=1071&thread=38r04r01, 정보부 권력의 비대화 (ibid.)


제2장 -전-노 11기의 63년 쿠데타 음모

 
2대 부장 김용순, 겨우 45일 재임에 끝나다

 
김재춘은 최고위원이면서 군경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의장 주변에서 파워맨으로 통했고...구두 발령을 ....


 이 건에 대해서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데 4대 의혹 사건이 불거지고 내부 투쟁이 격화되면서 혼란스러운 가운데 박정희가 김재춘을 중앙정보부장으로 구두발령을 냈다가 당시 정보부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8기생의 반발로 번복한 사정을 기술하고 있다.   

[박정희 생애] 제13부 내부균열 (6) -- <394>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9030370362

 [박정희 생애]내무덤에 침을 뱉어라 <395>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9032270329

 
당시 중정지부장 (마산에 사무실이 있었다)이었던 J가 그 사정을 말한다.

 
해당 중정 경남지부장 J는  전재구를  가리키는 걸로 보인다. 당시 그는 6국장으로 정치수사 및 국내 정보 수집을 담당하고 있다가 최고회의 내의 파벌 투쟁의 여파로 함경도 파를 달래기 위하여 경남지부장으로 좌천되었다.  [박정희 생애]내무덤에 침을 뱉어라 <395>

 취임 다음 날인 2월 23일 정보부차장, 국장, 지부장 등 8기생 중심의 JP계 간부 31명을 잘랐다.

 
 당시 해임된 인사내역(원대복귀 포함)은 국,과장급 28명(지부장 포함), 검사 3명이며 신규 교체 인원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은 전직

                                          1963년 2월 23일 경향신문 참고


차장
박원석 소장(공군참모차장)


1차장보(정보차장보)
김동배 준장(해군정보참모부장)


2차장보(보안차장보)
여운상(서울지검 부장검사)


기획통제관
김경옥 대령(최고회의재경위원회 보좌관)


1국장 (해외정보공작)
하태영 준장(군사정보부대 MIU 부대장)


2국장 (해외정보분석)
한무협 준장( 6군단 참모장)


3국장 (국내보안정보)
길전식 대령


5국장(대공수사/활동)


6국장(특명활동)


7국장 (총무)
김해영 대령(해병훈련단 참모장)


감찰실장 전재덕
비서실장
통신실장
관리국장 박창수


정보학교장 윤일균

보안국장 이상무 李相武 (임무는?) 참고

 
 이는 62년 무렵 확대된 직제에 기반한 것으로써 이러한 기구 변화는 62년4월 무렵까지는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개정 중앙정보부법 공표) 여기서 특징으로는 종전의 해외 정보(대북 정보 포함)이 해외정보 수집.공작과 분석 분야가 분리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창설 당시에는 기획운영, 행정관리 2명의 차장을 두었으나 이 후 개편으로 한 명의 차장 하에 차장보를 두어 각기 해외와 국내를 분담하게 되었다. 해외 담당의 경우 정보차장보(제1차장보)가, 국내 분야의 경우 (국내)보안차장보(제2차장보)가 관장했다. 이 시점의  개편에 대해서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석정선 정보차장보 산하 정보분야의 3개국중 제1국은 정보수집, 제2국은 정보분석, 제3국은 통신정보의 임무를 담당했다. 오탁근 보안차장보 산하의 보안분야 3개국은 4자를 피해 제5국부터 제7국까지 명칭을 부여하고 각각 기획보안정보, 특수정보활동, 홍보심리전을 담당케했다" [박정희 생애] 제13부 내부균열 (1) 정보부 권력의 비대화  -- <389>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9022370237

*62년 초 개편 직제

부장
김종필

차장
서정순

비서실장
고재일
정해식

감찰실장

통신실장

관리관실장
정지원

정책연구실장
최영두

1차장보(해외정보)
석정선

2차장보(국내보안)
오탁근

1국(해외정보수집)

2국(해외정보분석)
윤일균

3국(국내정보)
고재훈?

5국(대공수사)

6국(특별활동)
전재구

7국(총무)

 단 해당 기술에서 여전히 일부 시기 혼선이 보이는 데 7국이 홍보 심리전을 담당하는 부서가 된 것은 김형욱 부장 재임 시기이며 당시 7국은 총무국으로 여겨진다.  63년 전두환이 7국 인사과장을 맡았던 것도 당시 7국이 인사.총무 담당 부서라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page=1&C_IDX=5767&C_CC=AZ

 
 그리고 8기가 아니더라도 JP와 친하다는 간부라면 내보내 남은 사람은...


 책 앞 부분에서 기술된 것처럼 윤일균은 공군 정보국장을 지냈고 이 후 중앙정보부에 들어와서 62년 초 무렵석정선의 후임으로 2국장을 맡아 해외 정보 업무를 담당하며 김재춘 부임 시까지 재직하다가 이 후 정보학교장으로 전보되었다.


 제목 : 한국 중앙정보부 김종필 부장의 미국방문

네 명의 한국관리들이 한국에서 왔다 : 김종필 자신; 중앙정보부의 제2국장 윤일권(Yun Il-kyun) 대령; 계획국장 조주원(Cho Chu-won) 대령; 김의 통역관으로 참가한 중앙정보부의 연락담당국장 김상인(Kim Sang-in) 대령 1962년 11월 2일

국무부 발송 항공서한 (윤일균이 윤일권으로 잘못 번역되어 있지만 이 무렵까지 그가 석정선 후임으로 2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http://www.archives.go.kr/archivesdata/upFile/palgan/20070329150628495.pdf

 제3장 -대통령의 칼, 김형욱 정보부

뚝심의 ‘돈까스’, 남산공화국 재편 ㆍ105


그리허여 구성된 실.국장급은 다음과 같다. 감찰실장 박승권 ...


 이 내용은 기본적으로 김형욱의 회고록 혁명과 우상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기술되었으며 대체로 이 전 조직이 계속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여기서는 7국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의아스럽다. 이 전의 7국이 총무국이었는 데 여기서는 6국을 총무국이라고 하는 걸로 보아 개편되었거나 혹은 페지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다음 기사에서 김형욱 취임 이 후에도 7국이 여전히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63년 8월 3일 경향신문 참고

  이 전에는 6국이 특명수사국이고 7국이 총무국이었는 데 6국이 총무국으로 개편된 것을 감안하면 7국은 과거 6국이 담당하던 정치 수사. 사찰을 담당하는 부서로 추정할 수 있으며 이 기사의 내용은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김세배, 이도환 등 한 검사 출신이 이 부서의 국장을 담당했었던 사례에서도 이 부서가 수사 업무를 담당했던 것을 시사한다 .

 
대검수사국장 김세배 (전 5국장) 7국장 경력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401220032920102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4-01-22&officeId=00032&pageNo=1&printNo=5615&publishType=00020


부산지검 차장 이도환 7국장 역임 경력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3010032920411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3-01&officeId=00032&pageNo=4&printNo=8437&publishType=00020

 또 한 김형욱 회고록에서도 자신이 67년 선거 이후 홍보.심리전 활동을 전담하는 8국을 설치했다고 기술하고 있어서 언급되지 않은 7국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이렇게 여타의 부서와는 달리 7국의 존재를 밝히지 않은 데 대한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추정컨 데 이 7국이 과거 특명활동국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하면 회고록에서 이 후 정보부장을 지낸 이후락이 총무국이었던 6국을 특명수사국으로 바꾸어서 정치 탄압과 고문을 일삼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데 자신의 부장 재임시에도 같은 부서가 있었다면 자가당착이 되기 때문에 이를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고 여겨진다.

 이 7국은 심리전국 창설 이후 곧 폐지.개편(아마도 5국에 흡수)되고 대신 심리전국이 7국으로 개편되어 상당기간 이어지게 된다. 대개 중앙정보부를 다룬 자료나 회고에서 7국을 심리전국으로 기술하는 것은 여기서 비롯된다. 초대 8국/7국장으로 임명된 김기완은 국방부 정훈감 출신으로 군에서 심리전을 담당한 바 있다. 그 후 그는 나중에  주일공사로써 DJ 납치 사건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그 아들이 현 주한 미국 대사인 성 김이다. 이 후 이 심리전국은 70년대 중반 무렵까지 7국으로 알려졌고 업무 특성상 선전 문화 매체와도 관련이 깊어서 원로 문화인들 회고에 가끔씩 이와 관련된 언급이 등장하기도 한다. (참고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640399 )


68년 당시

부장
김형욱

차장
이병두

1차장보(정보차장보)

2차장보(보안자창보)

기획조정관실장
강창성

비서실장
문학림

감찰실장
방준모

통신실


1국(해외정보수집)
이철희 66 ~


2국(해외정보분석)
양해경 68 ~ 69


3국(국내보안정보)
전재구 64 ~ 69


5국(대공수사)
홍필용 64 ~ 68


6국(총무)


7국(심리전)

김기완 67 ~


외사정보국

관리국

윤보선 후보 당선되면 사살하라ㆍ114

김재춘이 그 집을 나서니 백태하 등 중정요원 들이 그를 미행했다


백태하는 육군 중령 출신으로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후 입사하여 제주,경기지부장, 서울 분실장, 6국장(총무)을 지냈다. 특히 서울 분실장 시절 경향 신문 탈취 공작에 깊이 관여하기도 하였다. 당시 경향신문은 반정부 논조가 강했고 공화당 창당 및 집권 과정에서 이탈한 김재춘 전 부장이 이를 인수하려고 시도하였다가 정보부에 의해 좌절되었다.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백태하 회고  https://www.whoim.kr/detail.php?number=3041&thread=38r04r01,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928 참고)


윤칠용 방첩부대의 "테러충성"


윤필용씨가 오늘날 "많고 많은 반혁명 사건 중에서도...

 
 이 원충연 사건을 밀고한 이 모 소령은 이상열이다.  그는 당시 1군 보안부대장으로 사건 모의에 가담하여 이를 녹음한 후 제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후 중정에 들어가서 나중에 파리 주재 공사가 되었다.국정원 과거사 조사에 따르면 그는 김형욱 사건  김형욱 유인 살해를 지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후 귀국하여 전주지부장과 해외공작국장을 역임하였다. 정보 일선에서 물러난 후 주 미얀마, 리비아, 이란대사를 지내면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추적특종] “김재규, 10·26 1년 전 박정희 시해 모의”1965년 ‘反혁명사건’ 관련자 접촉… 핵심 인물 급사로 물거품 월간 중앙 2005년 09월호 http://blog.daum.net/hanmailhan/2171914

김형욱, 반JP 칼을 뽑다ㆍ131


당시 3국장 C씨의 얘기를 들어본다.


 이 3국장 C는 전재구이다. 그는 서울분실장으로 있다가 64년 6.3 사태 무렵 김영민의 후임으로 다시 3국장이 되어 YTP 사건 당시국내 정보 업무를 총괄하였다. YTP 사건 처리와 관련된 저간의 대화는 김형욱의 회고록에서 언급되고 있다. 다만 회고록의 관점이 자신의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C가 전재구라는 것은 여기에 명기되어 있다.


제4장 - 피 묻은 3선 개헌, 대가는 해임

후계 물망 JP 철저히 짓밟으라-복지회 사건ㆍ153 


최영두가 중정 연구실장을 할 떄 송상남은 차장이었던 인연....


 정책연구실은 중정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정보.수사 뿐 아니라 국가 정책 전반에 관여하게 되면서 창설되었다. 각종 분야별 전문가들을 모아서 각 분야발 사안을 연구하여 정부 기관에 제공하고  정책제안하는 싱크탱크적인 기능을 하였다. 이 정책연구실은 국내 보안 부서와 더불어 중정의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이 후 이러한 기능은 국내 사찰 감시 기능과 융합하여 정책 스크리닝.
모니터링 기능으로 유지되어 국정에 대한 동원 조정의 기반이 되었고 이는 한국적 정보기관의 한 특성으로써 계속 이어져 왔다.
창설 당시 정책연구실장은 최영두가 맡았고  강성원이 행정관으로 실무를 전담했다.

정보부 권력의 비대화  -- <389>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9022370237


권총 들고 관리한 군납이권의 행방ㆍ159 


김형욱 부장은 이 무렵 전모 국장을 시켜 동아일보 간부들을 미행


 본문에 언급된 전모 국장은 당시 3국장 전재구이다.이는 본문에서처럼 김형욱 회고록에 명기되어 있다. 전재구는 64년부터 69년 무렵까지 본부에서 3국장을 역임하며 국내 정보 전반 특히 정치 정보.공작을 관할하였다. 이 무렵 언론 담당 조정반이 설치되었고 이들은 각 신문사별로 담당요원을 지정하여 해당 언론사 내부 사정 수집 및  협조요청을 통한 기사 수정. 보도 중지 업무를 담당하였다.

김형욱 회고록,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31331.html


김형욱·이후락, 개헌의 희생양 되다ㆍ172


 3선 개헌 국민투표를 며칠 앞둔 69년 9월 초순 3국장 전재구도 날아갔다. 후임은 김형욱이 그의 회고록에서 호평한 동향 출신 김영민이었다. 63년 대통령 선거 때 이미 3국장을 했던 인물이었다....

 국내 정보 특히 정치를 담당하는 3국장은 선거 및 정치 공작의 주무 부서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김영민은 육군첩보부대 공작처장 출신으로 김형욱 부장 취임 이 후 3국장이 되어 63년 선거 관련 업무를 총괄했다. 이 후 64년 이철희의 후임으로 해외 정보 공작을 담당하는 1국장으로 전보되었고 전재구가 그 뒤를 이어 3국장으로 임명되었다. 김영민은 다시 3국장을 잠깐 지내다가 김계원 부장이 취임하자 정무식이 이 직책을 넘겨받았고 70년 후반에는  전재구가 다시 3국장을 맡아 대통령 선거를 담당하게 된다.

 
제6장 - 배꼽 아래 인격 있나? 궁정야화(宮井夜花)


DJ 돌연 후보로 ‘진산 후보’ 공작 물거품ㆍ252 


김계원 부장은 즉각 69년 9월 이래 정치공작을 지휘해온 3국장 정무식을 바꾸었다...


 본문에서 기술하듯 이와 관련된 인사 배치는 전적으로 71년 선거를 대비한 것으로 정치 담당 주무부서인 3국장에 노련한 전재구를 앉히고 국내 보안차장보에 강창성를 임명하여 국내 업무를 총괄케 하였다. 이들은 이후락 부장 부임 이후에도 계속 유임되어 71년 선거 때까지 계속 선거 대책을 담당했다. 전재구의 3국장 임명을 조언한 김동근 비서실장은 이 후 6국장을 거쳐 강창성의 후임으로 보안차장보에 임명되었다.


제7장 - 정치공작 사령부와 선거판 여우

정보부, ‘엄창록 선거전략’ 책 펴내ㆍ266 


뒷날 중정 3국장이 된 C는 태완선의 노트를...


당시 엄창록 공작은 대선을 겨냥한 것으로 이 문제가 대비될 때 시점을 고려하면 이 C는 조일제로 여겨진다.


보안차장보를 지낸 K씨가 독후감...


 엄창록 공작이 시작된 시기나 대선 관련성을 고려한다면 이 K는 71년 선거를 담당했던 강창성이나 그 후임이었던 김동근 중 한 명이 아닐까 추정된다.

제8장 - 이후락·김재규·윤필용의 충성경쟁
 

HR 정보부의 3김 운명 감정과 역학 점괘ㆍ292

김성락 국장을 시켜 운세감정을 은밀히 시도...

 김성락은 당시 판단기획실장이었다. 그는 언론인 출신으로 합동통신과 연합통신에서 근무하였고 이 후 유정회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91년 6월 30일 경향신문 참고

 이 판단기획실은 이후락 부장 부임 이 후 신설된 것으로 추정되며 국내 정보 전반 분석 및 생산, 정책 판단 및 공작 기획 업무를 담당했다. 종전에는 3국이 국내 정보 수집과 생산을 같이 담당했는 데 판단기획실이 설치되면서 분석 판단 임무가 분리되었다. 이 판단기획실은  정보부를 넘어서서 국가 정책 전체에 걸친 검토,심사 및 정책 입안.개발을 담당하였고  막후에서 정치 공작이나 민심 수습 등 국정 전반의 배후에서 활동하였다.

1971년 대선자금 국가 예산의 1할 600억 썼다ㆍ296

70년말 HR은 정보부장으로 돌아오자 남산 핵심멤버, 즉 부장, 차장, 차장보, 실장, 국장급 이상의..
또 한가지는 중정이 행정부의 상징건물 꼭대기에 앉아 "천하"를 굽어보는...
 
 이는 정보부장 개인의 권력과 스타일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지만, 한국정보기관의 특성과 그 역할을 드러내주는 상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즉 정보기관이 각 국가 행정 부처들 위에 올라가서 국정 전체를 조정하고 통할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보활동 특히 국내정보활동은 단순한 대공.방첩 차원을 넘어서서 정치 사회 행정 문화 언론 경제 등 사회 각계 각층의 동향과 실상을 파악하여 이를 종합하여 국정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데 투입되었다. 이러한 역할은 유신 시대 절정에 이르러 정보부는 정책 전반에 개입하여 각종 정책 건의 및 부처 간 정책 조정.심사 등을 관할하고 각종 정책을 개발.제안하는 등  말 그대로 '천하관청'으로써의 역할을 했다. 특히 국력의 조직화와 효울의 극대화를 내건 유신 체제 하에서 정보부는 국정 동원과 조정의 축이었고 관계기관대책회의는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각종 분야별 정책개발에 관련하여 본문에서 사회당 육성, 빈민구제 등을 예로 언급하고 있다.

위 중정 지휘부의 정부종합청사 이전 건에 대해서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을 지냈던 김성진은 박정희가 이를 알고 질책하여 다시 원상복귀했다고 회고하고 있는 데, 이 것이 그가 중앙정보부의 위와 같은 기능을 무시했다기보다는 정보기관의 은밀성, 그리고 이후락 개인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한때 중정부장실을 광화문에 있는 종합청사 맨 위층으로 옮겼던 일이 있었다. 지금은 철거된 조선총독부 건물 안에 있는 총리실을 밑으로 내려다 보는 위치여서 제법 위압적인 인상을 줄 수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박 대통령은 크게 힐책하고 원위치로 돌려보냈다. "정보부라는 기구는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일해야 하는 조직인데 어쩌자고 사람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종합청사의 맨 꼭대기 층에 들어가 있느냐"

['朴대통령의 입' 9년] 32. 유신 반대 공작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62312

 이러한 기능은 어떤 의미에서 정보기관의 싱크탱크적인 측면을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고 이는 국가정보를 고도의 전문성과 지식이 집적된 특수한 지식으로 본 미국의 정보 개념 그리고 CIA의 기반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책 차원의 정보활동은 국내 감시.사찰 및 각종 보안.수사 활동과 결합하여 정보부의 위상과 영향력은 극대화되었다.
국내 정보활동이 가진 정책 조율이나 조정적 역할에 대해서 장세동 안기부장 역시 안기부장을 행정조직이라는 건반을 연주하는 피아노 주자에 비유하기도 하였는 데 이 역시 "천하관청"으로써의 정보부 역할과 맥을 같이 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정보기관의 이러한 국정 종합. 조정적인 성격은 이 후 약화되고 축소되긴 했지만 정책 스크린닝이나 모니터링, 정책 과제 발굴 같은 이름으로 지금껏 계속 유지되고 있고 이는 국내 정보활동의 보이지 않는 근거가 되고 있다.  (국정원 시대를  포함한 국가정보기관의 정책적 역할에 대하서는 노무현 시대의 국정원 개혁
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3/06/23/200306230500003/200306230500003_9.html
, 국정 조정은 총리실로 보내고, 국정원은 순수 정보 공작기관으로 만들라 http://blog.donga.com/milhoon/archives/969를 참고. 이는 국가정보기관 개편에 있어서 깊이 숙고해야 할 요소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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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4 20:03

블로그 개설 9주년

 요즘 통 블로그를 드르는 간격이 일정치 않아서 뒤늦게 알았는 데 여기를 연 지 9주년이 지났군요.
벌써 이글루를 시작한 지 이렇게 되었나 생각하니 참 감회가 새롭군요.

우연찮은 계기로 여기에 블로그를 시작한 후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때로는 즐겁고 기쁜 일도 때로는 서글픈 일도 있었지요. 초창기 이글루스를 생각하면, 어떻게 보면 서브컬쳐의 집산지였던 그 때 그 느낌에 향수에 잠기기도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라는 것은 결국 어쩔 수 없는 바겠지요.
 블로그를 하면서 물론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지만  이를 통해 좋은 분들, 혹은 경청할 만한 분들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접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연을 쌓을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득이 큰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쟁쟁한 메이저나 기라상같은 블로거-비록 떠나신 분들도 적지 않지만- 분들에게는 비교할 수 없는 구석 귀퉁이에 처박혀 있는 초초초 마이너 블로그지만 그 동안의 세월과 추억 그리고 여기서 다루었던 자료와 포스팅들 이러한 흔적의 파편들이 씨줄날줄 엮여져 그 동안의 제가 살아온 생의 일부를 짜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9주년의 시간 동안 쌓여진 결과물을 수치로 보면 얼마나 여기가 저 멀리 구석에 있는 지 단적으로 드러나지요. 수십, 아니 수백만 번의 조회수나 세 자리 수씩 이상의 일일 방문객을 기록하는 그런 메이저들이 즐비한 걸 생각하면 참으로 소소한 규모지요. 하지만  그러한 수치로써는 환원할 수 없는 그러한 것들이 여기에 녹아있고 이 것들이 제 삶의 일부로 남아 가고 있죠. 



  그 동안 이 곳을 찾아주시고 때로는 성원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하는 바도 있고 사정이 어찌 될 지 모르지만 가능한 한도 내에서는 이 곳은 계속 운영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3/02/11 06:24

DGSE 2013

DGSE

2012.12 DGSE 조직령 개정 http://www.defense.gouv.fr/dgse/tout-le-site/direction-generale

기존 총국장 직할 및 국 단위 수준만 명기. 개정령에서는 일부 부Service 단위까지 포함

2013 조직

총국장 Directeur général
에라르 꼬르뱅 드 망구Érard Corbin de Mangoux 
(전 대통령 국내 정책( 안보) 보좌관 Conseiller à la présidence de la République)


총국 행정실장 Directeur de Cabinet (No.2)
Frederic Beth 전 특수작전 사령관

제3, 8 해병공수보병연대 근무, 6해병보병대대장 역임 In, 
 2003 참모본부 작전 기획.지도 센터 Centre de Planification et de Conduite des Operations 근무,
수상 군사 보좌관(아프리카 담당)
2007 참모본부 작전 기획.지도 센터 Centre de Planification et de Conduite des Operations  소장
2009 특수작전사령관 Commandement des Operations Speciales - COS
2010 소장 승진

보좌관장 Chef de Cabinet
Fabienne DAVIET

(전문)보좌관s Conseillers du Directeur (Moyen-Orient; Afrique; Europe et Russie)

감찰감 du service de l’inspection générale

보안부 Service de sécurité

대외관계부 service des liaisons extérieures

상황 센터 Centre de situation


행정관리국


국장
Pierre Pouessel


보건, 근무 안전.조건과 le bureau comité d’hygiène, de sécurité et des conditions de travail ;
방호보안과 e bureau prévention protection incendie
어학 la mission langues


인적자원 담당 차장/부국장 adjoint, en charge des ressources humaines
Frédéric Négrerie


고용부 Service de la gestion des emplois
Patrice CURTY 현직 여부


인적 자원 관리부 Service de l'administration des ressources humaines
Rémy GIQUEL, chef d'études


교육/훈련부 Service de la formation
Lieutenant-colonel Henri DONADIEU DE LAVIT


재정.예산부 Service du budget et des finances service des finances et du budget
Jean MAFART


작전지원부 Service du soutien aux opérations
Général de brigade Philippe BLANQUEFORT


정보국 La Direction du renseignement   (DR)


국장
François Sénémaud 전 주 라오스 대사 2012.9


1988 ~ 1990 내무장관 보좌관
190 ~ 1993 암만 대사관 참사관
1993~ 1995 외무성 중동.북부 아프리카 국장 보좌관 chargé de mission auprès du directeur Afrique du Nord et Moyen-Orient au ministère des affaires étrangères
마드리드, 베이루트 근무
2001 ~ 2005 외무성 국제 협력.개발총국 전략, 평가 및 자원부장 le service de la stratégie, des moyens et de l'évaluation à la direction générale de la coopération internationale et du développement

2008 ~ 2012 주 라오스 대사

부국장/차장 adjoint
Marc Pimond


총국장 아랍. 테러 담당 보좌관
총국장 보좌관장
정보국 테러대책부장
중앙국내정보국 K분국장  sous-direction K de la DCRI

정보활용 담당 차장 adjoint en charge de l’exploitation.
Jean-Pierre B.

elle est chargée de l'exploitation du renseignement économique et technique
recueilli par les fonctionnaires de la Direction des opérations (DO) à l'étranger ainsi qu'en France

수집 담당 차장 adjoint en charge de la recherche

확산대책부 le service de contre-prolifération

테러대책부 le service de contre-terrorisme

경제안보부 le service de sécurité économique

지역 정치 정보 ,방첩부 le service de renseignement géopolitique et de contre-espionnage

부장


지역별 부서


아랍
아프리캬
유럽
아시아
미주


(방첩 담당 차장 가능성?)
작전정보원
기타 방첩 단위s


전략국 La Direction de la stratégie  (DS)


국장
Rémi Maréchaux, 2010.8 (전 대통령 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담당 전문 보좌관)


기술국 La Direction technique (DT)


국장
Bernard Barbier


정보 지원 체계처/ 정보 체계.지원처 la division des systèmes d’information et du support


작전기술처 la division des technologies du renseignement
renseignement d’origine électromagnétique, pénétration informatique, cryptage et décryptage

감청센터 Les centres d'écoute
전자 수집 분석 L'exploitation des écoutes électromagnétiques
컴퓨터 침입 Les systèmes de pénétration des ordinateurs
국가 암호 복호 프로그램 Le programme national de cryptage et décryptement  ( 서신 감시interceptions des mails) (travaille au profit de tous les services de sécurité nationaux)


기술정보 활동.생산처 la division production et actions de renseignement technique.

soutien technique, techniques spéciales, renseignement d’origine image

기술지원
특수기술 (현장 작전 지원 )
화상정보(엘리오스, UAV)


작전국 La Direction des opérations (DO)


국장
Eric Bucquet


차장/부국장

공작부 Service Action SA
Christian Subtil 07 ~

작전국 부국장
해상작전훈련 센터 /꾸엘레른 기지 Centre Parachutiste d'Entrainement aux Operations Maritimes base de Quelern 기지장


참모부 état-major
 작전 전비처 division préparation opérationnelle


특수훈련 센터 Centre parachutiste d'entraînement spécialisé (CPES) 위장 요원 양성 파견
특수교육 센터 Centre parachutiste d'instruction spécialisée (CPIS) 특수전 훈련 양성
해상작전 훈련센터 Centre Parachutiste d'Entrainement aux Operations Maritimes 수중폭파, 해상특수작전 훈련


알파 sections Alpha


해외파견부 SM
원조부 Service Assistance ASS
(특수)작전부 Service Ops /KY  SO


이어지는 내용

2012/09/16 15:32

왜 민통당과 언론은 박정희와 러스크가 5월 27일에 회담을 가졌다고 했는가?

Memorandum of Conversation, Korea-Japan Negotiations

 아래 독도 폭파 발언 문서와 관련해서 해당 문서의 존재여부와 함께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이 바로 일자와 관련된 문제이다. 이는 민통당 측에서 독도 폭파 발언 문제 제기와 더불어 근거로 아래의 Memorandum of Conversation, Korea-Japan Negotiations 을 인용하면서 러스크와 박정희가 1965년 5월 27일 딘 러스크 미 국무장관 집무실에서 수교 협상에서 가진 대화록이라고 발언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 발언은 계속 인용되었고 여러 언론에서도 계속 이 비망록을 지칭하여 5월 27일 러스크 국무장관 집무실에서 이루어진 회담 기록이라고 보도하였다. (참고 1 , 참고 2, 참고 3 )

그런데 문제는 이 회담이 이루어진 박정희의 65년 방미 기간은 5월 16일에서 5월 27일 까지였고 5월 27일 시점에서는 이미 귀국했다는 점이다. (참고) Memorand um of Conversation, Korea-Japan Negotiations 와 를 보면 러스크와 회담은 5월 18일에 이루어진 것으로 나와 있다. 이러한 세부사항의 불일치는 해당 보도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렸고 일부는 이를 조롱거리로 삼아 시간여행이라도 했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리기도 했고 심지어는 보도 조작설까지도 제기되었다. 물론 날짜를 오기했다든지 착각했다는 식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지만 당사자들 뿐 아니라 언론들 역시 해당 문서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면서 5월 27일자라고 계속 기술한 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이 문서를 최초로 보도한 연합 기사 역시 해당 문서에 대하여 '당시 딘 러스크 미 국무장관은 5월27일 자신의 집무실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나 미국이 생각하는 독도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참고) 라고 기술하고 있어서 더욱 의아하게 하였다. 여기서 대부분의 언론들이 민통당 주장이 아니더라도 이 문서를 설명하면서 5월 27일자 회담이라고 보도한 이유는 알 수 있다. 바로 이 문서를 처음으로 알린 연합의 2004년 보도에서 그렇게 썼었고 다른 언론들은 이를 바탕으로 보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 문제는 "왜 연합뉴스는 해당 문서를 5월 27일 이루어진 회담의 비망록이라고 보도했는가"라는 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어지는 내용

2012/09/15 23:54

Memorandum of Conversation, Korea-Japan Negotiations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도 폭파 언급에 대한 기록은 분명 존재합니다.


 2004년 동아일보에서 보도되어 논란을 일으킨 바로 국무성 문서 회담 비망록 -한일 교섭 Memorandum of Conversation, Korea-Japan Negotiations은 일부에서 독도 관련 내용이 없다고 독도 폭파 발언설을 반박하는 Memorandum of Conversation SUBJECT Joint Communique to Be Issued by Presidents Johnson and Park (이하 Memo 50) ( Confidential. Drafted by Norred and approved in S on May 25. The meeting took place in the Secretary's Office. Washington, May 18, 1965, 10 a.m) 와는 별도의 문서로 확인

Memo 50은 러스크와 박정희와의 회담 요약문으로 적어도 현재 공개된 기록상으로만 보면 독도에 대하여 폭파나 공동 등대에 관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해당 문서가 실린 U.S. Efforts To Encourage Normalization of Relations Between the Repub -lic of Korea and Japan: Document List Document 363: Editorial Note에서는 상기 사안을 언급하며 Memo 50을 참고하라고 하고 있다.

"Secretary Rusk suggested erecting a jointly operated lighthouse, allowing both sides a share of the island and gradually diffusing the issue. President Pak commented that such a project “just would not work.” (See Document 50.)"

 여기서 두 가지 가정을 할 수 있다. 363 Editorial Note이 주를 잘못 인용하였거나, 혹은 현재 공개된 Memo 50에는 삭제 누락된 부분이 있음을 시사한다. 전자가 맞다면 독도 폭파나 공동 등대에 관한 문제를 언급한 Memo 50과 별도의 문서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Memo 50은 Memorandum of Conversation, Korea-Japan Negotiations이 아니라는 이야기

 동아일보가 보도한 Memorandum of Conversation, Korea-Japan Negotiations 공개 관련 기사에서 해당 문서 사진이 실려 있다. (http://www.donga.com/pdf/donga/200406/21/2004062140A04040101.pdf)  사진의 내용을 보면 양자는 별도의 문서라는 걸 알 수 있다. Memo 50은 양자와의 회담 일반을 요약한 반면, Memorandum of Conversation은 이 회담 내역 중 독도를 비롯한 한일 교섭 문제만을 별도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지 및 관련 사항

서지 관련 사항을 살펴 보면 우선 위에 찍힌 Confidential은 비밀 분류 등급상 이 문서가 비(秘)에 해당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문서는 회담 내용 중  특정 주제 즉 한일교섭만 다루고 있으며 예의 Memo50에 기록된 것과는 별도로 이루어진 회담을 다루고 있다. 이는 Memo 50에는 박정희 러스크 외에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여기에는 둘과 배석 통역만이 참석자로 기록된 것으로 봐서 별도의 회동, 보다 은밀스러운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 한 Approved in S 5/25/65라는 부분에서 이 문서가 65년 5월 18일 11시 30분에 이뤄진 회담 내용을 기록하여,  65년 5월 25일 정식으로 장관의 승인/결재를 받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내용 자체는 65년 5월 18일의 회담을 기록하고 있지만 정식 문서로써 결재가 된 것은 65년 5월 25일로 5월 25일자 문서라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 (이 걸 착각하면 27일자 문서라고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본다)  
  이 문서가 기안 및 결재 같은 과정을 거쳐 작성되었다는 것을 보면 이 것이 공식외교문서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한 송부처 항목에도  장관 비서실S/sec을 비롯한 국무성  내 관계 부서 (FE 극동국, INR/OD 정보조사국 국장실 Office of the Director, Bureau of Intelligence and Research, S/P 정책기획실 ) 뿐만 아니라 다른 관계 기관(*백악관, CIA, 한국. 일본 대사관, CINCPOLAD 태평양 사령부 정치고문실)에도 송부되기도 헀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문서는 일각에서 주장하듯 단순한 개인적 메모나 기록이 아닌, 국무성 차원의 공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문서 수신자 중 백악관White House의 Mr.Thomson은 당시 NSC에서 Far East 담당관으로 재직했던 James Thomson 으로 보인다. (참고 1, 2 )

내용

 전문공개가 아니라 사진에 찍힌 내용뿐이지만 저기에 나온 내용에도 해당 문장이 드러나 있다는 것은 읽을 수 있다. 글자체가 희미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이 문서를  출처로 밝히며 인용하고 있는  Pacific Rim Law & Policy Journal 2002.1에 실린 The 1951 San Francisco Peace Treaty with Japan and the Territorial Disputes in East Asia의 인용부와 비교하면 내용을 재구성할 수 있다.

 In the course of private talks on other matters, Secretary Rusk referred to the Korea-Japan negotiations,and said that us? hoped for an early conclusion. President Park stated that one of the irritating problems, although it was a small one,
in the negotiations was Tokto Island (Takeshima). These are uninhabited rocks in the Sea of Japan that are claimed by both Korea and Japan. Korean security forces actually guard them, and the Koreans believe that they historically belong to Korea. The Japanese believe they have a like claim. President Park said he would like to bomb the island out of existence to resolve the problem.

Secretary Rusk stated that there had been rocks out in the ocean which had been bones of contention between U.S and Great Britain for 100 years, but both sides thought they were not important enough to endanger relations for, so they just refused to consider them

He suggested that perhaps a joint Korean-Japanese commanded light house be set up and the problem of to whom it belon ged left unanswered, letting it die anatural death. President Park commented that a joint lighthouse with Korea and Japan just would not work

 중간의 기울임 체 부분은 아래 눈몬의 인용 부분에서 생략된 부분으로 러스크가 미국과 영국 사이에도 비슷한 갈등이 있었지만 양국은 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라는 사례를 인용하여 한국 측을 설득하려는 내용으로 보인다.


    "The 1951 San Francisco Peace Treaty with Japan and the Territorial Disputes in East Asia", Pacific Rim Law & Policy   Journal 2002.1

 그리고 이 문서를 처음으로 보도한 것은 연합통신으로써 위 동아일보 기사는 연합통신의 선행 보도에 바탕을 둔 것이다. 연합의 해당 보도를 보면 이 것이 한일 수교 교섭 관련 미국 외교 문서들을 입수 분석한 기획물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한 이 기사에서는 문제의 독도 폭파 발언을 비롯하여, 논문에서는 생략된 러스크의 미영 사례 발언까지 옮기고 있어 사진에 나온 문서 내용을 비교적 충실하게 옮긴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 

 이 포스팅은 일부에서는 존재조차 의심하고 , 혹은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메모 정도로 공신력을 의심받던 Memorandum of Conversation, Korea-Japan Negotiations의 존재와 그 신뢰도를  입증하기 위한 것으로 이상에서 보듯이 이 문서가 실존하는 공식문서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기서 언급된 독도 폭파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이를테면 일각의 말처럼 62년 회담에서 나온 일본 측 말을 재인용한 것인지에 아니면 회담 도중 감정 표출에 의한 것인지 대해 판단을 내리기에는 이 문서로는 부족하며 보다 추가적인 자료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p.s > 동아일보에 실린 문제의 문서를 인용하면서 독도 폭파 발언을 부각시키는 쪽도 그렇고, 그런 내용이 없다고 반박하는 쪽이나 모두 Memorandum of Conversation SUBJECT Joint Communique to Be Issued by Presidents Johnson and Park 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

이 문서 사진이 실린 동아일보 기사를 링크해놓으면서 정작 Memorandum of Conversation 50 아니면 Document 363 내용을 출처라고 하거나  Memo 50을 찾아보고 그런 내용 없다고 하고 있으니... 그냥 바로 저 동아일보 기사 찾아서 사진만 보면 되는 데 저런 생각을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게 믿기지 않음. ( 아 연합 검색으로 문서 사진을 찾으신 분이 있으셨군요. 역시 이런 분이 계시네요 http://soakaeofh.egloos.com/5129355 덧글 참고)


일단 별도의 문서라는 건 입증된 것과는 별개로 363 Editorial Note에 나온 등대 관련 내용이나 독도 관련 발언이 공개된 Memo 50 에서는 삭제 누락되었을 가능성도 아직은 배제할 수 없음


2012/09/09 17:19

대륙의 흔한 언론인들


일전에 조사할 일이 있어서 관련자료를 봤는 데 대륙의 언론인들은 참 다재다능하신 분들이 많으신 것 같군요. 원래 언론계 종사하신 분도 있지만 교수나 통역 등 다른 일 하시다가 갑자기 언론사에 특채라도 되셨는 지 한 자리 하시고 해외 주재 특파원까지 하신 분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군요. 또 언론인 하시다가 갑자기 외교관에 채용되셔서 A국에서는 기자 생활, B국에서는 외교관으로 근무하시고 그리고 귀국하셔서 갑자기 국책 주요 연구소나 교육기관에 중요 직책을 맡으신 분들도 계시는 걸 보니
정말 언 관 학계에 걸처 경력을 쌓으셨더군요,

몇몇 사례를 보면




이어지는 내용

2012/09/04 11:56

대백과 복원 작업 상황 진척 및 도움요청 막 나가는 곳

 
대백과 복원 한 자락 로보트 만화영화 대백과 / 아니메로봇대전과

 일전에 몇 번 언급한 바처럼 그 동안 에전에  나왔던 소위 대백과들의 일본 원판을 찾아서 그 해당내역을 국내 발행판들과 비교하여 재현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였는 데 작업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어느 정도 규모와 대상을 정하여 작업의 대상을 정했습니다. 일차적으로  과거 나온 대백과 시리즈 중 특정 작품만 다룬 단권식, 특히 건담 종류를 제외하고여러 종류의 작품들을 묶어서 낸 , 주로 고전 로봇물들을 다룬 책(원서와 해당 작품이 나온 시기를 보면 당연하겠지만요)들을 일차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대충 각 출판사별로 조사를 해서 다음 서적들을 일차 대상으로 선정하여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각 제목에 밑줄이 그어진 것들은 어느 정도 내용이 파악, 혹은 추정이 된 상태라는 걸 의미하며 취소선이 그어진 것은 작업이 거의 완료(90% 이상) 된 것들을 의미합니다. 현재는 능력개발 로봇대백과/대사전과 다이나믹 콩콩의 로보토 만화 영화 대백과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상세 내용은 각 포스팅 참고) 그리고 볼드체는 제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1차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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