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내각 정보관에 미타니 경찰청 외사정보부장 임명 발표
정부는 28일 , 4월1일부로 카네모토 토시노리(兼元俊徳 ) 내각 정보관의 후임에 경찰청의 미타니 히데시(三谷秀史) 외사 정보부장(54) 을 충당하는 인사를 결정했다. 미타니씨는 쇼와 49년 입청으로 , 차관급인 내각 정보관에의 기용은 「세 계단을 건너뛴 것 이상」(정부 고관) 의 등용 인사다. 배경에는 「포스트 코이즈미」를 노려서 , 약하다고 여겨지는 수상관저의 정보수집 능력 강화를 꾀하려고 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기대도 있을 것 같다.
「안전 보장이나 유효한 외교를 전개하기 위해서 정보수집 능력은 지극히 중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베씨는 28일의 회견에서 , 미타니씨의 기용을 기회로 장기적 시야에서 정부의 정보수집 체제의 재건을 진행시키려는 생각을 나타냈다.
내각 정보관 인사는 작년부터 현안이었다. 카네모토씨는 헤이세이 13년 7월에 취임 , 교대기에 들어가 있던 후 , 「북한이나 중국등의 중요 정보를 관저에게 전하지 않았다」라는 불만의 소리가 관저내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 경찰청 뿐만이 아니라 , 외무성이나 방위청 등 관계 성청의 기대가 교착하여 , 인선은 난항이 되었다. 「경찰청이 위기 관리감과 내각 정보관을 독점하는 것은 이상하다」라고 , 경제 산업성으로부터의 기용도 검토되었지만 , 경찰청이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 후 , 경시총감 경험자의 이름도 부상했지만 , 본인이 사양했다.
그러한 가운데, 16년 5월에 주 샹하이 총영사관의 남성 직원이 자살한 사건을 내각 정보 조사실이 파악하고 있으면서 , 코이즈미 쥰이치로 수상에게 전하지 않았던 사실이 작년말에 발각. 수상은 격노했다고 여겨져 후임 선택은 급 피치로 진행되었다. 이번 달 중순 , 수상관저에서 열린 회의에서 , 경찰청은 가네시게 (金重凱之 . 쇼와 44년입청)전 경비 국장 을 추천했지만 , 후타바시 마사히로 관방 부장관 등이 저항. 아베씨도 미타니씨 발탁에 동조했다고 한다.
눈독의 대상이 된 미타니씨는 , 경비·공안통을 걸어 , 외무성이나 방위청에 출향 경험이 있다. 모리 요시로 수상의 비서관을 맡아 정계·관계에 발이 넓다. 다만 , 「약간 술버릇이 나쁘다」라는 평도 있어 , 모리 정권 말기에 쿄오도 통신 정치부 기자를 손바닥으로 쳐서 , 사죄하는“사건”도 일으켰다. 이 건에 대해 아베씨는 회견에서 「그러한 반성해야 할 경력도 고려한 다음의 인사야」라고 말했지만 , 이례의 인사로 내각의 「정보수집력」이 올라갈까 주목받는다'
산케이 신문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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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각정보관 인사건은 카네모토 임기가 끝나감에 따라서 상당히 관심있게 지켜 보고 있던 건인 데 꽤 뜻밖의 인사군요. 관행상이나 현재 인사 구도상 현 경찰청 경비국장 고바야시 카케히토(小林武仁 전 내각위성정보센터 차장. 경찰대학교장)이 되지 않을 런가 생각헀는 데 미타니 부장이라니 꽤 뒤통수를 치는군요.
내각정보관은 현재 차관급으로써 형식상은 경찰청 장관보다 격이 더 높고 보통은 본청 국장(주로 경비국장)이나 경찰대학교장 등 경찰 고위층 중 수뇌부(장관.총감) 진출에서 떨어진 이들이 가는 게 보통이니 이 번 저 인사는 기사에도 나왔듯이 세 단계를 건너뛴 셈이군요 (뭐 실제로는 부장 급이면 국장이나 경찰대학교장으로 가서 내각정보관으로 가는 게 관례이니 실제로는 2단계 정도지만 어쩄든 파격은 파격이군요)
대략 직제상으로는 내각정보관/경찰청 장관/경시총감- 차장- 국장- 부장 순 정도로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참고 미타니 히데시 이력]쇼와 26년(1951년)생. 교토대 졸
쇼와 49년(1974년) 경찰청 경무국 인사과 채용 (警察庁警務局人事課採用人事課採用 )
쇼와 61년(1983년) 2월 미국 주재 일본 대사관 1등 서기관(在アメリカ合衆国日本国大使館一等書記官 경시정.)
헤이세이 원년(1989년) 경찰청 경비국 공안 1과 이사관 (警察庁警備局公安第一課理事官. 당시 공안1과는 일본공산당 담당 )
헤이세이 3년(1991년) 경시청 제1방면 본부장. 경무부 참사관 겸(警視庁第一方面本部長・警務部参事官兼務, 경시장 )
헤이세이 4년(1992년) 오사카부 경찰본부 경비부장 (大阪府警察本部警備部長)
헤이세이 6년(1994년)
방위청 방위국 조사1과장 (防衛庁防衛局調査第1課長. 군사 정보 부문 특히 보안 기밀 유지 관계)
헤이세이 9년(1997년)
방위청 방위국 조사과장( 防衛庁防衛局調査課長 . 97년 1월부로 정보본부 설립으로 조사1, 2과가 조사과로 통합). 오카야마 현 경찰 본부장( 岡山県警察本部長 )
헤이세이10년(1998년) 경찰청 장관관방 국제부 국제1과장(警察庁長官官房国際部国際第一課長 ).경찰대학교 국제수사연수소장 대행
헤이세이 12년(2000년)
경찰청 경비국 경비기획과장 (警察庁警備局警備企画課長 ). 내각총리대신비서관 (内閣総理大臣秘書官 )
헤이세이 13년(2001년) 특별수사간부연수소장(特別捜査幹部研修所長. 경시감)
헤이세이 14년(2002년) 치바 현 경찰본부장(千葉県警察本部長 )
헤이세이 16년(2004년) 경찰청 장관관방 국제부장 (警察庁長官官房国際部長 ) .
경찰청 경비국 외사정보부장(警察庁警備局外事情報部長. 2004. 4년 조직개편으로 국제부 폐지. 외사정보부로 기능이관과 더불어 전보)
헤이세이 18년(2006년) 내각정보관(内閣情報官)
(Source :
내각관방 웹 사이트)
급작스러운 인선의 배경기사에도 언급되다시피 카네모토 내각정보관 같은 경우는 임기도 임기지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상하이 영사관원 자살 건 당시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은폐하고 알리지 않은 문제가 불거져서 상당히 미운 털이 박힌 상태였죠. (사건 은폐 건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고. 얼마 전 이 전신관이 남긴 유서가 언론에 공개되어 사건은 계속 확대되고 있군요.
[참고])중국측 , 기밀 집요하게 요구…자살 샹하이 영사관원의 유서 입수
2004년 5월 , 재샹하이 일본 총영사관의 관원(당시 46세) 이 자살한 문제로 , 관원이 중국의 정보 당국으로부터 외교 기밀등의 제공을 강요받아 자살할 때까지의 2년간의 경위를 엮은 총영사 앞으로 보낸 유서의 전모가 30일 밝혀졌다.
본지가 입수한 유서에는 , 정보 당국자가 전관원의 출신 성청을 묻기 시작하거나 「관원이 만나고 있는 중국인의 이름을 말하라」라고 다가서는 등 , 교묘하고도 집요하게 압박하는 수법이 상술되고 있다. 중국측이 관원을 수중에 넣기 위해서 이용한 중국어의 문서도 존재하고 있어 , 이것이 , 일본 정부가 「영사 관계에 관한 빈 조약 위반」이라고 단정한 중요한 근거가 된 것도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관원 자살과 중국 당국자는 어떠한 관계도 없다」라고 표명하고 있지만 , 유서와 문서는 그것을 부정하는 내용이다.
자살한 관원은 , 총영사관과 외무성 본성과의 사이에 교환되는 기밀성의 높은 문서의 통신을 담당하는「전신관」. 유서는 총영사와 가족 , 동료에게 댄 합계 5통이 있어 , PC로 작성되고 있었다. 총영사 앞의 유서는 합계 5매의 장문으로 , 중국측의 접근으로부터 자살을 결의할 때까지의 경위가 기록되어 마지막에 「2004년 5월 5일」의 일자와 이름이 자필로 기입해지고 있다.
그것에 따르면 , 정보 당국은 , 우선 03년 6월 , 관원과 교제하고 있던 가라오케점의 여성을 매춘 용의로 구속. 처벌을 하지 않고 석방해 , 관원에의 연락역으로 삼아서 「(관원과 )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다」라고 타진해 왔다. 관원은 동년 12월 이후 , 여성 관계의 빚으로 당국자와의 접촉을 피할수 없게 되었다. 접촉해 온 것은 「공안의 대장」을 자칭하는 남성과 통역의 여성의 2명이었다.
당초 두 명은「샹하이의 발전을 위해 , 외국인의 의견을 듣고 싶다」등과 같은 저자세였고 관원도 지장이 없는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지만 , 04년 2월 20일 , 자택에 닿은 중국어의 문서가 관계를 일변시켰다. 문서는 , 스파이의 감시에 해당되는 「국가 안전성의 사람」을 자칭해 , 「당신이나 총영사 , 수석 영사의 어느쪽이든 연락을 하고 싶다」라고 요구.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 , 「〈1〉반드시 공중 전화를 사용하고〈2〉금요일인가 일요일의 19시 -20시의 사이에 연락해라」라고 지정되어 있었다.
관원은 「대장」에게 상담. 그러저 약 2주일 후 , 「범인을 체포했다」라고 대답이 왔다. 문서를 만든 사람을 잡았으므로 , 문제는 해결했다 , 라는 의미였다. 관원은 이 때 처음으로 문서는 「대장」등이 만든 가능성이 높고 , 자신을 수중에 넣기 위한 날조라는 걸 깨달았다. 유서에는 , 「(문서는 ) 그들이 짰다」는 걸 깨달았다 , 라고 쓰고 있다.
「범인 체포」를 기해 , 대장」등은 「예의를 분별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신세를 지면 , 예를 다해야 한다」같이 온화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던 태도를 급변. 사할린에의 이동이 정해진 직후의 동년 5월 2일에는 「왜 (이동을 ) 입 다물고 있었냐」라고 공갈했다. 「당신이 왔던 것은 중국에서는 법률에 위반한다. 영사관원이라고 하는 입장에서 , 그런 것을 해 공짜로 산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나라와 나라의 문제가 될거야. 일을 잃어 , 가족은 어떻게 한다. 당신이 「협력한다」라고 하면 , 모두 원만하게 들어간다. 당신이 「불행」이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대장」은 , 총영사관원 전원이 실려 있는 중국어의 명부를 보내 , 「전원의 출신 성청를 대답해라」라고 다가섰다. 「당신은 전신관일 것이다. 보고가 전부 당신 쪽을 지나는 것을 알고 있다. 관원이 만나고 있는 중국인의 이름을 말하라」라고 압박했다.
마지막에는 , 「이번에 만날 때 가져올 것은 무엇이냐」이냐고 묻자「우리가 흥미 있는 것이다. 알고 있겠지」하고 압박했다. 약 3시간에 걸쳐 공갈된 관원은 협력에 동의해 , 같은 달 6일 오후 7시의 재회를 약속했다. 관원은 , 「대장」은 다음에는 반드시 암호 전문의 정보를 교환하는 「통신 시스템」을 물어 온다고 생각해 면회 전날의 5일에 유서를 써 , 6일 미명 , 총영사관내에서 자살했다. 유서에는 「일본을 팔지 않는 한 나는 출국할 수 없게 된 것 같기 때문에 ,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라고도 적고 있다.
영사 관계에 관한 빈 조약」은 제40조로 , 영사관의 신체나 자유 , 존엄에 대한 침해 방지를 위해 , 인수국이 「모든 적당한 조치」를 취하다고 하고 있다. 유서의 내용은 구체적이어 , 그것을 증명하는 중국어 문서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 중국측의 조약 위반의 혐의가 농후하다) 요미우리 신문 3월 31일
그래서 급거에 후임자를 물색하게 되었고 경찰청은 처음에 자체적인 인사구도를 고려해서 -내각 정보관은 대대로 경찰고위 관료직이 맡아 왔으므로 그 인사는 경찰의 수뇌부 인사와 맞물리게 됩니다. 올 8월 우루마 현 장관의 후임으로 요시무라 차장이 취임할 예정이고 그 후속 인사이동을 생각하면 좀 미묘한 시기이긴 하군요- 영향이 적은 전직 인사를 선택했는 게 아닐 까 합니다. 그러나 타 성청들의 반발과 거론된 인사들의 사양 같은 문제( 제안을 받은 경시총감 춣신의 인사는 오쿠무라 마스오 전 총감이라더군요)로 인하여 장래 인사 구도 정리를 염두에 두고 차차기 레이스 후보자 급을 올려 조기에 인사정리를 한다는 의향이 작용하여 이 번의 이례적 인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나 봅니다.
아베가 민 미타니 카드그리고 이 번 인사는 고이즈미를 계승할 유력인사인 아베 신조 관방장관을 위한 기반다지기 측면도 있으면 그의 영향력도상당히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단 고이즈미는 올 9월로 물러나고 내각 정보관이 보통 4~5년 재직 한다는 걸 고려하면 신임 내각정보관은 고이즈미보다는 주로 그 후임에게 봉직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는 고이즈미 이 후 아베 정권이 탄생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아베가 자기 사람을 심었다는 측면이 강한 걸로 보입니다. 두 사람 간의 관계를 보면 미타니는 아베의 지역구인 아먀구치 현경에서 근무한 적이 있고 또 한 모리 정권 시 수상비서관을 지내면서 당시 내각관방부장관으로 재직하던 아베와 밀접히 일한 적도 있습니다. 실제로 초기 인선이 난망을 겪은 후 미타니의 이름이 떠오른 데에는 아베의 제안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편 마타니가 맡고 있었던
외사정보부는 산하에 외사과와 국제 테러 대책과를 두고 있으며 일본 내의 외국 공관. 정보 기관 활동에 대한 감시(당연 조총련도 그 대상) , 방첩, 국제 테러 대책 , WMD 확산대책과 그에 관련된 전략 물자 및 무기 관련 기자재 불법 유출 방지 ,외국 정보 보안 기관과의 연락 공조 그리고 최근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는 납치 문제를 담당하는 경찰 내의 정보 부서입니다. 아베가 납치 .위폐 문제 등에 있어 대북 강경책을 네세우며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둘은 해당사안에 있어 상당히 호흡을 맞추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 건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고)
향 후 정보 체제 개편에의 영향은?또 한 이 번 사안과 관련하여 가장 관심이 쏠리는 문제는 이 번 인사가 향 후 일본의 정보 체게 개편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라는 부분입니다. 최근 몇 년간 일본에서는 주로 우익 계열의 정치가, 평론가 , 학자 등 사이에서 정보력 강화에 대한 논의가 부쩍 늘어났으며 이런 움직임은 범세계적인 테러 정세. 북핵. 납치 문제(최근에는 위폐 문제가 여기 가세), 중국에 대한 우려 증대, 미국과의 안보 협력 강화, 이라크 파병과 관련된 중동의 불안 같은 각종 현안 속에서 우경화 분위기와 맞물려서 상당히 힘을 얻고 있습니다. 지난 해부터 문제가 불거지게 된 상하이 영사관 전신관 자살 사건 역시 첩보 공작과 관련된 사안이라서 이에 대처할 정보체제 개편이 주요한 사안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이 대열에 아베가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들이 어떻게 가시화되고 실현될 것인지는 아직 애매한 사안이지만 앞으로 몇 년 안에 어느 정도 구체적인 방향이 드러나지 않을 까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 번 신임 내각 정보관 임명은 이런 점에서 일본 정보 보안 체계의 개편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고 기사에 보도된 바와 같이 내각 정보관의 경찰 독점에 있어서 외무, 방위 등 타 성청의 반발과 비 경찰 출신자 임명에 대한 기대는 바로 향 후 예상되는 이런 개편에서 현재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경찰 중심의 현행 정보 체제에서 주도권을 새로 쟁취하려는 계산이 반영된 것이 아닐 까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몇 년간 진행된 정보 체제 개편 논의에서 실무진 사이에서는 CIA 같은 미국 모델보다는 각 기관들이 저마다 역할을 갖되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조정 통제하는 영국식 모델을 선호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고 이러한 구성에서는 외무성( 정확히 말하자면 외무성 하에 놓여 외무대신의 지시를 받는 기관)이 주도적인 역할을 갖게 된다는 성격이 짙었습니다.( 이러한 구상들과 움직임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1,
2 ,
3)
그런데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전신관 자살 파문에서 외무성이 정보 은폐에 일부 가담한 정황이 밝혀지고 아베를 비롯한 강경파들이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을 보면 이는 정보 체계 개편에서 외무성의 발언권이 약화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외무성 주도의 대외 정보 강화안은 상당히 축소.수정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이 만약 아베 정권이 탄생한다면 그의 성향이나 발언 내역 경력 등으로 볼 때 강경적인 대외 정책과 함께 이를 뒷받침해 줄 정보체제 역량 강화가 주요한 현안이 되고 미타니를 중심으로 한 내각 정보조사실이 이러한 개편을 주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현재 일본 정보 체제의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각 성청간의 정보 공유 부재, 할거주의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치적 추진력이 요구되는 바 아베가 내각 정보 조사실 중심의 정보 체제 개편. 역량 강화를 강하게 지지, 후원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 이렇게 정보 체제를 개편하고 정보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단순한 조직 제도적 차원만 아니라 실제로 운영 단계서의 겸험 축적과 숙련 인력 양성과 같은 과정이 필요한 바 비교적 연소(?)한 미타니를 앉히므로써 상당한 기간에 걸처 그러하 정보 체제 개편 강화 작업을 관리케 한다는 의미로 읽혀집니다. 이를 볼 때 이 번 내각정보관 인사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보 체제 재건을 염두에 둔 거라는 아베의 발언의 의미가 보다 확연하게 드러납니다.물론 이런 바들은 아베 정권 탄생 여부부터 시작해서 정권의 지지도, 안정성, 관료적 반발을 극복할 추진력 등 등 상황에 크게 좌우되곘지요. ( 뭐 아베하고 후쿠다 지지율 격차가 계속 좁혀들고 있다고 하니
과연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모르곘군요. 만약 아베가 패하면 그야말로 김치국부터 마신 꼴이 되니.. 솔직히 아베 정권의 탄생은 보고 싶지가 않군요.)
이런 면들을 보면 서서히 일본 정보 체제 개편이 뭔가 실제적으로 나타날 기미를 보이는 듯 싶습니다. 그 모습이 어떻게 될 지는 두고 봐야 하곘지만요
P.S 1.위 기사에도 언급된 기자 폭행 전력 때문에- 그 것도 취중에 실수(?)한 것도 아니고 수상 관저에서 계쏙 취재를 요청하며 수상에게 질문을 퍼붓던 기자를 "왜 질문 안 받겠다는 데 자꾸 (수상을) 귀찮게 하냐"며 손으로 머리를 쳤다고 하더군요 . 먼산-벌써부터 "내각 폭행관"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붙어 다니더 군요. (사진을 보니 꽤나 체격이 좋은 것 같은 데 저 덩치로 감정이 격해져서 후려쳤다고 하면.... 흐읍 나름대로 덜덜덜이군요)
P.S 2. 저 전신관 자살 건에 대한 2ch 계시판에 올라온 것중 참 기가 차를 하는 게 있더군요
マジな話、電信官だけは二次元ヲタにした方がいいかもしれん (진짜로 하는 이야기. 전신관만은 2차원 오타로 하는 게 좋을 지도 모르는)
中共工作員による攻略には、既婚者・独身・ホモよりも、独身2次元オタのほうが強そうだw (중공 공작원에 의한 공략에는 , 기혼자·독신·호모보다 , 독신 2차원 오타 쪽이 강한 듯하다.)
그러자 여기에 대해 나온 리플은 더 걸작...
二次オタは限定品で簡単に落とせるよ(2차 오타는 한정품으로 간단히 함락시킬 수 있어)그 야말로 안습.... 과연 투챤넬 (여러 가지 의미로..)
http://news18.2ch.net/test/read.cgi/news4plus/1143743612/ 상하이 전신관 자살 건
http://www.zakzak.co.jp/top/2006_03/t2006033101.html 관련 보도 [(북조선)납치문제전문간사회( 납치 문제 특명팀. 해당 관계 정부 기관간 태스크 포스) ]의장: 스즈키 세이지 내각관방 부장관
관련 성청 구성원
분과회分科会로써 신설( 2006. 3)
내각관방 부장관 주재
법집행반 法執行班
경찰청 (경비국) 외사 정보부장
금융청 총무기획국 특정정보관리관
법무성 대신관방 심의관(입국관리국 담당)
경제산업성 무역경제협력국 무역관리부장
재무성 대신 관방 심의관( 관세국 담당)
해상 보안청 차장
정보수집회의 情報収集会議
내각정보관
경찰청장관
공안조사청 장관
외무성 사무 차관